일본 게임 웹진 오토마톤에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다. 지금의 스팀은 인기 장르의 흐름만 제대로 타면, 예전보다 훨씬 많은 작품이 주목받을 수 있는 시장이라는 것이다. 기사에서 인터뷰에 응한 게임 마케팅 분석가 크리스 주코프스키(Chris Zukowski)는 이를 두고, 인기 장르 안에서는 이용자들이 유사한 작품에도 비교적 호의적으로 반응하는 일종의 ‘황금기’가 형성돼 있다고 설명했다. 〈뱀파이어 서바이버〉 이후 급성장한 이른바 ‘뱀서라이크’ 장르와 〈R.E.P.O.〉로 대표되는 협동 멀티플레이 게임의 유행은 그 근거로 제시됐다.
이 기사를 읽으면서, 이런 뱀서라이크와 협동 멀티 플레이 게임의 유행 현상이 스팀의 PC 리듬게임 시장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것을 문득 깨닫게 되었다. 201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소위 ‘잘 나가는’ 리듬게임이라 부른다면 ‘비마니 시리즈‘로 통용되는 오락실 리듬게임과와 가챠를 접목한 모바일 리듬게임에 있었다. 반면 PC 리듬게임은 한국 시장만 놓고 보더라도 2010년대 초중반은 서비스 종료 소식이 더 익숙한 시기였으며, 한때 이름을 남겼던 작품들이 차례로 막을 내리면서 시장 자체가 거의 소멸한 것처럼 보이게 되었다.
그러나 2019년을 전후로 공기는 바뀌기 시작했다. 스팀 위에서 건반 리듬게임을 필두로 리듬게임 시장이 다시 힘을 얻었고, 뒤이어 서로 다른 감각의 신작들과 실험적인 비건반 리듬게임들이 연이어 등장했다. 이는 곧 2024년 스팀의 테마 할인에서 ‘리듬게임 축제‘가 따로 열릴 만큼 오늘의 스팀에서 리듬게임은 더 이상 변방의 장르가 아니다.
그렇다면 이 흐름은 어디서 시작됐고,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에 도달했을까. 이번 [비수기 탐험대 4월호]는 바로 그 질문을 따라가 보려 한다. 스팀 PC 리듬게임의 출발점, 부흥의 계기, 그리고 2026년 현재의 시장까지. 20년을 바라보고 있는 스팀 리듬게임 역사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 2008~ : 음악을 ‘연주’하기 전, 음악을 ‘플레이’하던 시절
가장 먼저, 스팀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리듬게임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보통 리듬게임이라고 하면 대개 정해진 음악과 채보, 그리고 판정선 위로 떨어지는 노트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스팀 초창기의 작품들은 그런 전형적인 문법과는 거리가 있었다. 오히려 사용자가 직접 소장한 음악 파일을 불러와, 그 곡의 흐름 자체를 플레이로 바꾸는 ‘음악 게임’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익숙하게 떠올리는 형태와는 사뭇 달랐다는 점이다.


현재 서비스 중인 리듬게임 기준으로 스팀에서 최초로 나온 리듬게임은 2008년 출시된 〈오디오서프〉다. 이 작품은 곡마다 미리 정해진 채보를 제공하는 대신, 사용자가 선택한 음악 파일을 분석해 그 곡만의 코스를 자동 생성하는 구조를 택했다. 여기서 ‘노트’에 해당하는 것은 판정선 위로 떨어지는 오브젝트가 아니라 트랙 위에 놓인 색색의 블록이었다. 플레이어는 머신을 조작해 블록을 연결하며 점수를 쌓았고, 핵심은 정확한 타이밍 입력보다 음악의 리듬과 에너지를 주행과 수집의 감각으로 해석하는 데 있었다.

이런 흐름은 이후에도 이어졌다. 2010년 출시된 〈비트 해저드〉는 음악 파일을 분석해 탄막 슈팅 스테이지를 자동으로 구성했고, 곡의 박자와 전개, 에너지에 따라 적의 출현과 전투 밀도가 달라지도록 설계했다. 2016년 발매된 〈Melody’s Escape〉 역시 같은 계열에 놓인다. 사용자의 음악을 분석해 리듬 노트를 생성하고, 캐릭터가 달리며 이를 처리하는 방식은 횡스크롤 러닝 액션과 리듬게임의 감각을 결합한 신박한 개념으로 등장했다.
정리하자면 이 시기 스팀의 ‘음악 게임’들은 보통의 의미인 ‘리듬게임’이라기보다, 음악을 어떻게 새로운 놀이 규칙으로 번역하려는 실험에 가까웠다. 정해진 채보를 얼마나 정확히 연주하느냐보다, 음악이라는 소재를 통해 얼마나 새로운 플레이 경험을 만들어낼 수 있느냐가 더욱 중요하게 여기던 시절이었다.
▣ 2011~2018 : 스팀에 건반 리듬게임이 자리 잡기까지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익숙하게 아는 건반 리듬게임은 언제부터 본격적인 형식을 갖추기 시작했을까. 2011년 출시된 〈Before the Echo〉는 4키 기반 건반 리듬게임을 도입했다는 점에서 초기 사례로 거론할 만하지만, 세 개의 화면에서 리듬 조작과 RPG식 전투가 동시에 진행되는 구조였던 만큼, 오늘날의 문법으로 보았을 때 ‘정통 건반 리듬게임의 시초’라고 부르기에는 다소 애매한 구석이 있다.

스팀에 건반 리듬게임이라는 형식을 더욱 분명하게 각인시킨 작품은 중국의 개발사 I-Inferno가 제작한〈MUSYNX〉였다. 2014년 모바일·콘솔로 출시된 〈MUSYNC〉를 PC 환경에 맞게 다듬어 2018년 스팀에 선보인 이 작품은, 4키와 6키, BGA, 키음, 낙하형 노트 구조 등 이른바 ‘리듬게임다운 리듬게임’의 요소를 비교적 또렷하게 갖추고 있었다. 동시에 모바일 리듬게임 특유의 사선형 플레이 감각과 PC 건반 리듬게임의 낙하형 구조를 한 작품 안에 함께 담아냈다는 점에서, 두 시장의 감각을 잇는 과도기적 작품이기도 했다.
즉, 뮤싱크는 스팀 위에서 건반 리듬게임이 더 이상 실험적인 변주가 아니라, 하나의 독립된 장르 형식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음을 보여준 작품이었다.
▣ 2019~2022 : 부활의 신호탄, 그리고 양대 축의 형성
스팀에 건반 리듬게임의 형식을 정착시킨 작품이 〈뮤싱크〉였다면, 그 장르를 본격적으로 대중화한 주역은 네오위즈의 〈탭소닉 볼드〉와 〈디제이맥스 리스펙트 V〉였다.

네오위즈는 PS4로 출시된 〈디제이맥스 리스펙트〉의 성공을 발판 삼아, 당시 한국 게임계에서 불모지로 여겨진 콘솔 게임의 가능성과 더불어 디제이맥스 브랜드의 부활을 확인했다. 이후 〈NEOWIZ MUCA〉 프로젝트를 통해 모바일과 PC 리듬게임 시장으로 보폭을 넓혔고, 그 흐름 속에서 등장한 〈탭소닉 볼드〉는 〈탭소닉 탑〉의 6키 기반 가변형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 건반 리듬게임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2019년 3월 정식 출시와 함께 18곡의 오리지널 신곡을 포함한 대규모 업데이트를 진행해 볼드는 당시 경쟁작이 드물었던 스팀 건반 리듬게임 시장에서 빠르게 자리를 잡았다. 당시 판매량 10만 장 이상을 달성하며, 네오위즈는 스팀 플랫폼에 대한 가능성 또한 확인하게 되었다.


그리고 시장 기대치를 본격적으로 끌어올린 전환점은 2019년 12월, 〈디제이맥스 리스펙트 V〉의 스팀 얼리 액세스 출시와 함께 찾아왔다. 이 작품은 단순한 이식작이 아니었다. 오픈 매치와 래더 매치, 키보드 전용 SC 패턴 등 PC 환경에 맞춘 전용 요소를 적극적으로 도입하며, 사실상 PC에 맞춰 다시 설계된 디제이맥스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여기에 포터블·테크니카 시리즈의 레거시 콘텐츠와 ‘V 익스텐션’ 같은 신규 콘텐츠와의 시너지가 더해지면서, 스팀 리듬게임 시장의 기준 자체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

이 흐름은 2021년 얼리 액세스로 출시된 네오노비스·스퀘어픽셀즈의 〈이지투온 리부트 : R〉로 이어졌다. 〈EZ2AC〉 시리즈의 계보를 잇는 이 작품은 정통 건반 리듬게임 문법을 기반으로, 코스 모드와 레이팅 시스템, 세밀한 최적화까지 두루 갖추며 ‘리듬게임 특화’라는 선명한 정체성을 드러냈다. 특히 2022년 선보인 〈프레스티지 패스〉는 당시 한국 리듬게임 시장에서 보기 드문 작곡가 라인업으로 화제를 모았고, 이를 계기로 〈이지투온 리부트 : R〉은 〈디제이맥스 리스펙트 V〉와 함께 스팀 리듬게임 시장의 양대 축으로 자리 잡게 된다.
이 두 작품의 부활이 더욱 의미 있게 읽히는 이유는 그 이전에 존재한, 길고 깊은 침체기였다. 2010년대 초반 국내 PC 온라인 리듬게임 시장은 빠르게 쇠퇴했고, 〈이지투온 리부트〉, 〈디제이맥스 트릴로지〉, 〈알투비트〉, 〈오투잼〉 등이 차례로 서비스를 종료하면서 시장은 사실상 붕괴에 가까운 상태를 맞았다. 그런 현실에서 2020년대의 〈디제이맥스 리스펙트 V〉와 〈이지투온 리부트 : R〉은 단순한 흥행작이 아니라, 한 번 사라졌던 시장을 다시 일으켜 세운 작품들로 기억되고 있으며 이는 곧 다른 인디/상업 리듬게임들이 스팀 플랫폼을 선택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 2023~2025 : 넓어진 시장, ‘조기 용서’의 소멸
다시 서두에서 언급한 오토마톤 기사로 돌아가 보자. 크리스 주코프스키는 오늘날의 스팀을 두고 상승세를 타기 시작한 인기 장르 안에서는 이용자들이 유사한 작품에도 비교적 호의적으로 반응하는 ‘황금기’라고 설명했지만, 동시에 그것이 아무 준비 없이 뛰어들어도 성공할 수 있는 ‘골드 러시’와는 다르다고 분명히 선을 그었다.


이때 그가 제시한 핵심 개념이 바로 ‘조기 용서(early forgiveness)’다. 조기 용서란 장르 초반에는 다소 미완성인 작품이라도 신선함과 재미만 있다면 플레이어들이 비교적 관대하게 받아들이지만 이후 작품 수가 늘어나게 되면 그 관대함은 빠르게 사라지는 개념을 의미한다. 조기 용서로 형성된 초반의 경쟁이 누가 먼저 흐름에 올라타느냐의 문제였다면, 이후의 경쟁은 누가 더 잘 만들었느냐는 기본으로 깔되, 무엇을 더 다르게 보여주느냐의 문제로 바뀌는 셈이다.
실제로 2023년을 기점으로 디맥과 이지투온이 세운 축이 견고하게 굳어가고, <식스타 게이트 : 스타트레일>을 시작으로 〈VVAV ONE〉, 〈플라티나 랩〉, 〈칼파 코스믹 심포니〉, 〈펌프 잇 업 라이즈〉 등 여러 리듬게임이 스팀에 잇따라 등장하면서 시장은 분명 넓어졌다. 하지만 바로 그만큼, 시장은 훨씬 더 냉정해졌다.
이제 이용자들은 단지 새로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작품을 오래 지켜보지 않는다. 시스템의 완성도, 수록곡의 설득력, 업데이트의 지속성, 그리고 게임이 끝내 무엇으로 기억되고 싶은지에 이르기까지 모든 요소가 더 빠르고 직접적으로 평가받는다. 실제로 〈VVAV ONE〉은 뚜렷한 반향을 남기지 못한 채 빠르게 동력을 잃었고, 〈오투잼 더 비기닝〉 역시 전반적인 품질 면에서 비판받으며 존재감을 잃어가고 있다.
한때는 강력한 차별화 요소였던 악곡 라인업조차 이제는 절대적인 무기가 아니다. 한때 〈이지투온 리부트 : R〉의 〈프레스티지 패스〉가 화제를 모았던 이유는 보기 드문 작곡가 구성이었기 때문이지만, 이제는 그 정도 라인업을 내세우는 작품들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이제는 단순 유명한 곡을 모아오는 것만이 아닌, 그 곡들이 게임 속에서 어떤 정체성으로 돋보이게 되는지가 더욱 중요해졌다.
결국 지금의 스팀 리듬게임 시장은 ‘새로운 리듬게임’이라는 이유만으로 유예받는 시점은 지나게 되었으며, 이제는 장르의 이름이 아닌 작품의 실력이 직접 평가받는 시장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 2025~ : 따라하는 유행이 아닌 새로움의 파도를 찾아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PC 리듬게임 시장이 가능성까지 사라진 가혹한 곳은 또 아니다. 오히려 기준이 높아졌기 때문에, 정형화된 문법 바깥으로 걸어 나가려는 작품들이 더욱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하이파이 러쉬〉와 〈뮤즈 대시〉는 액션과 플랫포머의 감각을 리듬게임에 접목해 게임의 조화를 이루어냈으며, 〈파스텔 퍼레이드〉와 〈비츠 앤 밥스〉는 미니게임의 형식을 빌려 과거 닌텐도의 리듬세상을 연상하는 장르를 보여주었으며, 〈도도리〉와 〈니엔텀 오푸스 제로〉는 서사와 분위기를 덧입혀 장르의 결 자체를 바꾸게 되었다. 〈융융 전파 신드롬〉은 전파곡과 미스터리 공포라는 이질적이면서도 새로운 테마를 만들게 되었으며, 여기에 〈할로원더밴드〉와 〈풍비박산〉 같은 새로운 인디 게임들까지 더 해지면서, 현재의 스팀 리듬게임 시장은 단순한 생존 경쟁의 장을 넘어 시장에 새로운 흐름을 일으키는 도전 정신의 파도가 되고 있다.
Fuyuki Hayashi (WHO YOU) : 본 작품은 처음부터 “잘 팔리는 게임”을 만들기 위해 기획된 프로젝트가 아닙니다. 숫자나 유행을 먼저 생각했다기보다, 저희가 진심으로 좋아해 온 것들—덴파송과 2차원 픽션, 그리고 그 문화가 제게 주었던 감정—을 손에 잡히는 형태로 남기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이 누군가에게도 닿았으면 했기에 화려한 성공이 아니더라도, 이 작품이 오타쿠 동지 한 사람의 마음에 깊게 남아 “나도 이 감정 알아”라고 느끼게 해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히 보답받는 기분이고 정말 행복할 것 같습니다.
〈융융 전파 신드롬〉 제작사 WHO YOU의 하야시 후유키(Fuyuki Hayashi)가 남긴 말이 이 현상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이 처음부터 “잘 팔리는 게임”을 목표로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사랑해 온 전파송과 2차원 픽션, 그리고 그 문화가 남긴 감정을 어떤 형태로든 붙잡아두고 싶다는 마음에서 출발했다고 말했다. 이 말인 즉슨 지금의 시장에서 결국 차이를 만드는 것은 단순히 어떤 장르에 올라탔는가보다, 그 장르 안에서 무엇을 만들었으며 어떤 개성을 선보인 것인가 더 중요해진 것임을 의미하고 있다.
▣ 마무리 : 준비된 자만이 거머쥘 황금시장
결국 지금의 스팀 리듬게임 시장은 분명 황금기다. 장르는 살아났고, 시장은 넓어졌으며, 그 안에서 새로운 가능성도 끊임없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그 빛은 누구에게나 같은 온도로 내리지 않는다. 기회는 많아졌지만, 용서는 짧아졌고, 시장은 점점 더 냉정한 얼굴로 작품의 완성도와 방향성을 가려낸다. 한때는 장르의 희소성만으로도 눈길을 붙잡을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 이름만으로 오래 버틸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그리고 이 감각은 비단 리듬게임에만 머물지 않는다. 지금의 게임계 전체가 서서히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비슷한 시스템, 비슷한 문법, 비슷한 유행이 쉼 없이 쏟아지는 가운데, 끝내 남는 것은 결국 ‘우리가 이것을 왜 만들었는가’를 끝까지 증명한 작품들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탐구해 본 스팀 리듬게임 시장은 단순한 하나의 장르 변천사라기보다, 오늘의 게임계가 어떤 기준으로 작품을 선택하고 버리는지를 보여주는 거울과 같아 보인다.
앞서 언급한 오토마톤의 웹진처럼, 지금 이 시장-스팀(Steam)-을 가장 정확하게 부르는 말은 여전히 황금기일 것이다. 다만 그것은 삽을 든 누구에게나 금맥이 허락되는 시대가 아닌, 유행이 걷힌 자리에서도 끝내 자기만의 소리를 남길 수 있는 작품만이 살아남는 시대 – 바로 그런 의미에서의 황금기라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번 칼럼을 만들게 된 계기인 일본 웹진 오토마톤과 크리스 주코프스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