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곡성에는 93세 ‘봄처녀’ 이순복 할머니와 ‘옥구슬’ 황귀옥 며느리가 산다.
4년 전, 늦은 나이에 연필을 잡아 시 쓰기를 시작한 그녀들. ‘봄처녀’와 ‘옥구슬’은 시를 쓸 때 쓰는 필명이다.
순복 할머니는 17세에 시집와서 아들 정동신(74) 씨를 낳았다. 하지만 아들 돌도 안 지나 남편을 잃었다. 그때 할머니의 나이, 고작 스물두 살이었다. 곁방살이가 낸 불에 재산까지 홀라당 타버리고 아들과 둘만 남겨진 순복 할머니. 아들만 보고 악착같이 버티고 살았다. 그렇게 어느덧 훌쩍 자란 아들이 며느리를 데리고 왔다. 바로 황귀옥(69) 씨다. 아들과 단둘이서만 살던 지난날. 집에 들어온 갓 스무 살인 어린 며느리가 꼭 딸 같고 반가웠다. 마을에서는 유명했던 순복 할머니의 며느리 사랑. 그런 아들 부부가 4남매를 낳았을 때는 또 얼마나 행복했던지. 마치 지난 세월을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며느리 황귀옥(69) 씨는 스무 살에 곡성으로 시집 왔다. 남편 동신 씨와 3년 동안 편지를 주고 받으며 펜팔로 연애하다 딱 세 번 만나보고 결혼을 결심했다. 아직까지 그 편지들을 전부 보관하고 있는 낭만을 간직한 부부다. 부부는 양잠부터 축산, 농원까지 안 해본 일이 없었다. 크게 지었던 관광농원은 처음에는 성공적으로 시작했지만, 끝에는 결국 빚더미에 앉게 되었다. 귀옥 씨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 그 곁에는 항상 시어머니가 있었다.
어느덧 50여 년을 함께한 고부. 서로 애틋해 처음 보는 이들은 엄마와 딸로 오해할 정도다. 굴곡진 생을 살아오며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 주었다. 아픔이었던 과거를 글로 풀어내기 시작한 그녀들. 시에 응어리를 털어놓자 마음이 평온해졌다. ‘봄처녀’와 ‘옥구슬’ 두 여자의 삶이 詩가 되는 순간 이었다.
아픈 시기를 함께 견디고 극복한 고부는 요즘이 가장 행복하다는데. 바로 4대가 한 지붕 아래 살게 되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졸업 후 떠났던 순복 할머니의 손주들이 곡성으로 돌아오고, 증손주들까지 불어났다. 복작복작하고 웃음이 가득한 집안, 곡성 대가족의 설은 특별하다. 설이 되면 식구가 많은 덕에 음식도 어마어마한데, 증손자들도 고사리 같은 손으로 거든다. 그 속에서 이런저런 수다 꽃을 피우는 가족들. 함께 해온 세월만큼 할 이야기도 산더미다.
4대 가족의 시 발표회가 열렸다. 설을 맞아 ‘가족’이라는 주제로 시를 써온 가족들. 귀옥 씨는 처음 만났던 날을 떠올려 시어머니에 대해 쓰고, 아들 동신 씨도 어머니에게 평소 말하지 못했던 말들을 시에 담았다. 그들의 속마음을 들은 순복 할머니의 눈시울도 붉어진다. 서로에게 마음을 전하는 시간. 시를 만나 더 끈끈해지는데… 애틋하고도 유쾌한 그 들의 나날을 인간극장에서 들여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