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임을 다한 모든 것들의 이름, 고물(다큐it)

길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고물들. 일상의 풍경 속에 묻혀 우리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 고물 속에는 삶의 고단한 흔적이 가득하다. 장사가 잘되는 가게 앞이나 골목길 분리수거장 등 얼핏 보면 쓸모없는 쓰레기더미에 불과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살아갈 힘이 되는 고물이 있다.

쓰임을 다한 모든 것들의 이름, 고물

“하도 오래 하다 보니까 어디쯤 가면

박스가 있고 그런 걸 아니까요.”

-김상철(가명) 폐지 수집으로 생계유지

다른 이들은 모두 잠들었을 시간이지만 폐지를 주워 생계를 유지하는 분들에게는 이 어두운 새벽이 출근할 시간이다. IMF 때 일자리를 잃고 종로 인근에서 노숙하던 김상철(가명) 씨의 끼니를 거르지 않게 해주었던 건 폐지를 수집하는 일이었다. 이 일을 해온 지도 20년째인 그는 이제 종로 바닥 어디에 폐지가 많은지 눈에 훤하다. 그렇게 발품 팔아 모은 폐지로 가장 이른 시간에 문을 여는 고물상으로 향한다. 그러나 요새는 코로나의 영향으로 폐지 가격이 많이 내려가 예전보다 벌이가 어렵다고 한다. 폐지 수집은 그만큼 가격 변동에 영향을 많이 받는 일이다.

고물에도 등급이 있다?

“9,000원도 많이 한 거래요. 옆집 이사 가면서 고철 같은걸

갖다줬으니까 그렇지. 아니면 돈 나올 것도 없지, 뭐.“

-김순분(가명) 폐지 수집 어르신

고물에도 등급이 있다. 무른 플라스틱보다는 딱딱한 플라스틱이 돈이 되고 철보다는 알루미늄이 더 비싸다. 고철은 1kg당 50원인데 비해 알루미늄은 그 10배인 1kg당 500원이다. 그렇기에 모여있는 깡통 캔 중에서 알루미늄 캔을 따로 골라내는 작업을 한다.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자신이 가져온 고물이 어떤 것인지 잘 알아야 제값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중국으로의 수출길이 막힌 데다 외국에서 값싸고 질 좋은 고물을 수입하기도 한다는데. 떨어지기만 고물값은 오를 기미가 보이지 않아 고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은 하루하루 불안하다.

고물로 희망을 만드는 사람들

“폐지 줍는 어르신들이 하는 활동은 엄격히 보면

환경을 보호하는 자원 순환 활동의 기초 단계라고 볼 수 있죠”

-기우진 러블리페이퍼 대표

폐지를 수집하는 어르신들이 가져오는 폐박스를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매입하는 사회적인 기업이 있다. 바로 러블리페이퍼라는 기업이다. 이곳에서는 원래 1kg에 40원 정도 하는 폐지를 1kg에 300원으로 매입한다. 또 이곳에서 사들인 폐박스는 근사한 작품으로 재탄생 된다. 예쁜 손글씨를 담은 액자, 그림이 그려지는 캔버스를 만드는 일이다. 폐박스를 재활용해 캔버스를 만드는 작업도 폐지 수집 어르신들이 직접 참여해 일자리로 제공된다. 온종일 폐지를 주워도 최저 시급만큼 벌기가 어려운데 여기서는 그 돈을 챙겨주니 하루 2~3시간만 일해도 2~3일 정도 폐지를 주운 만큼의 수입이 생겨난다. 이렇게 만들어진 폐박스에 멋진 작품을 그리는 작가들은 모두 재능기부를 하고 있다. 작품을 판매한 수입으로는 다시 폐지 수집 어르신들을 위해 선순환 된다고 한다.

노인의 몸으로 150kg에 달하는 리어카를 끌며 고물을 줍는 일은 고단한 일이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유일한 희망이자 생계의 수단이기도 하다. 지금보다 개선만 된다면 자원 순환의 역할과 어르신 일자리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고물 수집. 고물은 누군가에게는 버려지고 낡은 것들의 마지막 모습이지만 동시에 새로운 희망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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