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소금꽃이 피어나는 계절
햇빛과 바람, 바다와 땀이 만드는 생명의 선물
소금에 담긴 삶의 희로애락을 만나다
봄바람 타고 소금이 오시네
고운 흙 위에서 소금꽃이 핍니다
목포에서 배를 타고 꼬박 2시간을 가야 도착하는 신의도는 소금의 고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수많은 염전이 펼쳐져 있다. 이곳에서 대를 이어 소금을 생산하고 있는 강선홍 씨와 그의 형제들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아버지를 도와 소금을 만들어왔는데 아버지가 대나무로 짠 큰 바구니를 메고 있으면 작은 소쿠리에 소금을 담아 아버지의 큰 바구니에 넣었다고 한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강선홍 씨가 본격적으로 소금을 만든다. 그가 만드는 소금은 다른 천일염에 비해 결정이 2배 이상 큰 토판염인데 흔히 염전에서는 바닥에 합판을 깔고 다시 장판을 깔아 바닷물을 증발시키는 ‘간지’법을 쓰지만, 그는 해마다 봄이 오면 경운기로 염전에 있는 흙을 뒤엎고 바닷물을 담을 때마다 다시 롤러로 다진 후 미네랄이 풍부한 토판염을 생산한다. 또 간수를 빼고 소금을 보관하기 위한 창고에는 최소 3년에서 10년까지 간수를 뺀 소금들이 다양하게 저장돼 있다. ‘어제보다 좀 더 나은 소금’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는 강선홍 씨의 씁쓸한 뒷맛이 없고 단맛이 난다는 토판염 밥상을 만나본다.
솥에 고아내서 ‘소금’이지요
삼국시대부터 생산되던 자염(바닷물을 끓여서 만드는 소금)은 일제강점기부터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고, 한국전쟁 뒤 염전 대부분이 휴전선 북쪽에 위치하게 되면서 남한은 심각한 소금 부족 현상에 시달렸다. 소금이 쌀과 맞먹는 가격으로 유통될 지경이 되자 1950~60년대 초에 걸쳐 정부는 민간염전 개발을 적극적으로 권장해 천일염전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미미하게 맥을 이어가던 자염은 거의 사라졌다. 천일염의 생산성이 더 높았기 때문.
그러나 유동만 씨는 순천에서 자염을 생산하고 있다. 평생 농부로 살던 그는 순천만의 마지막 염전을 하던 이웃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고향의 마지막 염전을 지키기 위해 염전을 사들였고 14년째 자염을 생산하고 있다. 교대로 잠을 자며 2~3일간 쉴 새 없이 끓여내야 하는 자염 생산이 지겨울 법도 하지만 “소금은 염부들의 땀을 먹고 살아“라고 말하는 유동만 씨. 천일염과 달리 간수를 뺄 필요도 없고 건조시켜 바로 먹을 수 있다는 자염 밥상을 만나본다.
산초소금부터 버섯마늘소금까지! 소금의 놀라운 변신
산초소금, 버섯마늘소금에서 귤껍질소금이며 오미자소금까지. 천일염으로 다양한 소금을 만드는 박상혜 씨는 천연 조미료 연구가이다. 충청남도 보령에서 병원 의무기록사로 10년간 일했던 그는 많은 환자를 보면서 본격적으로 요리를 시작하게 됐다. 좋은 천일염을 구하기 위해 어디든 마다하지 않고 찾아가는 그는 “소금은 피할 것이 아니라 잘 먹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잘 고른 천일염을 볶아 수분을 날리고 말린 버섯과 마늘을 섞어 만든 버섯마늘소금은 움파국에, 산초가루를 이용해 만든 산초소금은 비린내를 잡기 위한 생선요리에, 오래된 간장에서만 생긴다는 고석소금은 홍갓지짐이에 사용하는 등 다양한 소금을 이런저런 요리와 조합시킨다는 박상혜 씨의 향도 맛도 다양한 소금 밥상을 맛본다.
450여 가구 주민들이 힘을 합쳐 염전을 만들다
1948년 만들어진 비금도의 염전은 ‘대동염전’으로 불리며 2007년 “인문적 경관 가치가 뛰어난, 살아있는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많은 염전들의 소유주가 외지인인 반면 대동염전은 비금도의 450여 가구 주민들이 염전조합을 결성하여 만들었는데 처음 염전이 만들어졌을 당시에는 100만㎡ 규모를 자랑하는 대형 소금밭으로 200여 명의 염부가 일했다고 한다.
이곳에서 소금을 생산하고 있는 최향순 – 명오동 부부는 햇소금을 거두는 날이면 이웃 염부들과 함께 생산식을 한다. 삶은 돼지막창을 오로지 소금에만 찍어 먹으며 햇소금이 오신 것을 축하 하고, 잡초를 없앨 때는 제초제 대신 소금을 뿌리며, 치약 대신 소금으로 양치를 해야 개운하다고 말한다. ‘염전이 소금을 빗자루로 쓸어 담기만 하면 되는 곳인 줄 알고’ 남편 따라 비금도로 들어왔던 최향순 씨와 ‘소금에 미쳤다’ 소리를 듣는 명오동 씨의 자긍심 가득한 소금 밥상을 받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