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디제이맥스 리스펙트 V’의 성공적인 스팀 출시 이후, 국내외 PC 리듬게임 시장은 새로운 르네상스를 맞이했다. 이 르네상스는 단순 주류 개발사뿐만 아니라,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무장한 인디 게임씬에도 활기를 불어넣었다. 그 결과 스팀의 리듬게임 장르는 다채로운 개성을 지닌 작품들로 한층 풍요로워졌으며, 플레이어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경험을 마주하게 되었다.
올해로 10주년을 맞이한 부산인디커넥트페스티벌(BIC) 2025는 이러한 경향을 명확히 보여주는 자리였다. 리듬게임이 부족했던 주류 게임쇼를 벗어나 수많은 인디 게임 중에서도 기존의 틀을 벗어난 신선한 콘셉트의 리듬게임들이 필자를 비롯한 관람객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이번 K리겜알리미 스페셜에서는 BIC를 찾아온 인디 리듬게임 중 필자가 느끼기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세 작품을 소개한다.
스크래치 그 감성 그대로 – one more mix
첫번째로 소개할 게임은 일본의 인디 개발사 아눌러스(Annulus)가 개발한 ‘one more mix’다. 이 게임은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DJ가 된다는 콘셉트 아래, 왼손으로 키보드를, 오른손으로 마우스를 사용하는 독특한 플레이 방식을 채택했다. 개발자인 이치카와 타키는 이 마우스 ‘스크래치’가 코나미의 전설적인 리듬게임 ‘비트매니아 IIDX’의 턴테이블 스크래치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밝혔다.
게임은 사이드 2키와 중앙 스크래치 노트라는 독특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좌측 키는 스페이스 바로, 우측 키는 마우스 클릭으로 처리하며, 중앙의 스크래치 노트는 마우스를 좌우로 ‘슥삭’ 문지르는 방식으로 조작한다. 이는 건반 리듬게임에서 보기 드문 조작계로, 실제 DJ가 된 듯한 손맛과 새로운 감각의 재미를 선사한다. 마우스를 활용한 스크래치 조작은 ‘Spin Rhythm XD’와도 맥을 같이 하는 부분이 있으며, 필자에게는 과거 ‘디제이맥스 포터블 : 클레지콰이 에디션’의 2B 모드를 떠올리게 하는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게임의 비주얼 역시 화려하다. 귀여운 것을 좋아하고 자기애가 강한 응석받이 ‘세라’와 인정 욕구가 강한 다우너계 ‘라네’가 만나 라디오 DJ로 함께 성장하는 이야기를 그려내며 타이틀곡인 ‘One More Mix’ 역시 스토리를 녹여낸 풀 애니메이션 BGA를 선보여 높은 퀄리티로 호평받았다. 데모 버전에는 유명 아티스트 ‘Snail’s House’의 곡이 수록되는 등 수록곡 면에서도 많은 이목을 끌었으며 이후 이 게임 역시 음악적 완성도를 인정받아 같이 소개할 ‘노이즈 캔슬러’와 같이 BIC 어워즈 루키 부문에서 ‘EXCELLENCE IN AUDIO’ 파이널리스트에 오르는 쾌거를 이루었다.
‘one more mix’는 2026년 겨울 얼리엑세스 출시를 목표로 개발 중이다.
노캔 이어폰이 되어 관찰하는 ‘일상의 재발견’ – 노이즈 캔슬러
일상의 소음 속에서 나만의 음악을 찾아가는 경험, 엠앤유(MandU)가 개발한 ‘노이즈 캔슬러’는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단순한 관찰자가 아닌, 인공지능 ‘Shiri’가 탑재된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인 ‘에이팟’이 되어 착용자의 감정을 인식해 그에 맞는 음악을 실시간으로 생성하고 재생하며 그들의 삶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독특한 콘셉트다.
게임의 이야기는 세 명의 주인공을 중심으로 전개된다.상념에 잘빠지는 ENT(F)P의 ‘밀로’, 솔직하지 않은 성격의 ESTP(J)의 시에라, 자유분방의 ENTP/INTP의 ‘한나’의 일상을 음악과 함께 따라가며 그들을 돕는 독특한 스토리를 보여준다. 이번 BIC에서 공개된 챕터는 ‘밀로’가 친구 ‘시에라’에게 연심을 품고 고백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플레이어는 ‘에이팟’이 되어 그의 설렘과 망설임의 감정을 음악으로 느끼며,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보편적인 ‘사랑’의 순간을 간접적으로 체험하며 깊은 공감과 이끌림을 느끼게 된다.

‘노이즈 캔슬러’의 진가는 게임 플레이가 ‘노이즈 캔슬링 무선 이어폰’이라는 콘셉트와 결합되어 새로운 시너지를 일으키는 점에 있다. 기본적으로는 간단한 2라인, 2키 구조를 따르지만, 그 연출 방식은 기존 리듬게임의 관념을 비튼다. 주변 소리를 허용하는 ‘주변음 허용 모드’에서는 양쪽에서 노트가 내려오는 익숙한 2라인 방식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소음을 차단하는 ‘노이즈 캔슬링 모드’가 활성화되면, 두 라인이 하나로 합쳐지며 해당 라인의 좌우에 노트가 배치된다. 이는 주변 소음을 차단하고 음악에 온전히 집중하는 상태를 시각적으로 탁월하게 표현한 연출이다. 여기에 두 라인이 완전히 하나로 통합되는 ‘모노 오디오’ 연출까지 더해져, 단순한 2라인 리듬게임을 넘어선 무선 이어폰의 특징을 살린 매우 독창적이고 인상적인 플레이 경험을 선사한다.
감성을 자극하는 도트 그래픽으로 표현된 도시 속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이 게임의 또 다른 핵심이다. 플레이어는 몽상가 ‘밀로’, 솔직하지 못한 ‘시에라’, 자유로운 영혼 ‘한나’ 등 등장인물들의 이야기에 깊이 관여된 음악을 플레이하며 그들의 공감대 속에 숨겨진 특별함을 발견하고, 자연스럽게 리듬을 타며 힐링을 경험하게 된다. 특히 ‘노이즈 캔슬러’는 Suno, Udio 같은 생성형 AI를 게임 내 음악 제작에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착용자의 감정에 따라 음악이 변화한다는 콘셉트에 강한 설득력을 부여했다. 그러면서도 효과음 등 부가적인 음원은 직접 제작하여 AI 기술에만 의존하지 않는 창작의 노력을 보여주었다. 스토리를 중시하는 연출 중심의 플레이는 기존 리듬게임 팬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선사했으며, 이러한 음악적 완성도를 인정받아 이번 BIC 어워즈 루키 부문에서 ‘EXCELLENCE IN AUDIO’ 파이널리스트에 오르는 쾌거를 이루었다.
노이즈 캔슬러는 2025년 가을 Steam과 스토브 인디에서 데모를 출시할 예정이다.
쿠킹마마입니다. 근데 요괴와 리듬을 더한 – 풍비박산
과거 인간계와 공존했으나 갈등으로 인해 분리된 요괴 세계. 기억을 잃은 채 이곳에 떨어진 주인공(플레이어)은 주인장 ‘여우’와 함께 요괴 세계의 포장마차 ‘풍비박산’의 직원이 되어, 모든 재료가 나오는 마법의 전기밥솥과 함께 각양각색의 한국 설화 속 요괴 손님들을 맞이한다. 주문을 받으면 요리 과정이 리듬게임으로 진행되는데, 가장 간단한 ‘밥’부터 명절에서만 볼 수 있었던 갈비찜, 떡국 등 친숙한 한식 요리의 각 ‘재료’를 만드는 과정이 리듬게임 커맨드로 구현되며 WASD/방향키 조합으로 주어진 커맨드를 리듬에 맞춰 넣고 엔터키로 재료를 완성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소위 ‘진상짓’이라 불리는 보스 페이즈 역시 리듬게임 커멘드로 처리되어 리듬게임의 재미 역시 챙겨 어려운 난이도보다는 연출적인 재미와 몰입감에 중점을 두어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게 만들었다.
물론 게임이 너무 순탄하게만 흘러가면 재미가 없지 않겠는가? ‘풍비박산’의 진짜 재미는 등장 요괴에 따라 달라지는 다양한 ‘방해’ 요소에 있다. 예를 들어, 실적 압박에 시달리는 저승사자 ‘저승이’는 주인공을 저승으로 끌고 가려는 설정에 맞춰 데미지를 입히는 보라색 ‘저주 노트’를 등장시키며, 기술 오타쿠이자 폭탄마 기질이 있는 도깨비 ‘두두리’는 시야를 가리거나 실제로 폭발하여 데미지를 입히는 ‘폭탄 드론 노트’를 소환하는 등, 각 요괴의 특성을 살린 기믹들이 게임의 재미를 한층 더한다. 반면, 험악한 인상과 달리 아무것도 하지 않는 두억시니 ‘복슬이’ 같은 갭 모에 캐릭터도 존재해 유머를 더한다.
이렇듯 게임의 매력은 개성 넘치는 요괴 손님들에게서 폭발한다. 포차의 주인이자 주인공을 거둬준 ‘여우’, 실적이 없어 동료 상사에게 까이지만 정작 대인기피증이 있는 저승사자 ‘저승이’, 폭탄 드론을 가진 폭탄마이자 첨단 기술 오타쿠 도깨비 ‘두두리’, 그리고 데모판 말미에 갑자기 밥솥에서 나타나 “이겼다! 데모판 끝!’, “예산이 충분했다면…” 같은 제4의 벽을 넘는 대사를 하는 ‘선녀’까지. 데모 버전만으로도 이처럼 매력적인 캐릭터들은 필자를 비롯한 BIC 현장 방문객들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또한 밝고 유머러스한 분위기로 진행된 전체적인 분위기에 더해 주인공의 기억상실과 어떻게 요괴세계로 오게 되었는지에 대한 내막, 그리고 집을 찾는 두억시니와 아버지를 찾는 두두리 등 심도 있는 캐릭터 떡밥도 준비되어 있어 앞으로의 이야기에 대한 기대감을 남겼다.
필자가 직접 이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느낀 점은, 이번 BIC에 나온 출품한 ‘리듬 결합’ 게임들은 직관성이 부족하거나 리듬 요소가 불편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은 것에 비해 ‘풍비박산’은 간단한 조작, 직관적인 시스템, 그리고 개성 있는 스토리와 캐릭터를 살려 주는 연출이 3박자가 완벽하게 어우러져 이번 BIC 최고의 ‘리듬 결합 게임’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큰 호감을 느꼈다. 이 호평는 BIC 커넥터즈의 “리듬과 미니 게임으로 손님들에게 음식을 대접하면서 쉴 새 없이 들이닥치는 밈과 패러디의 향연이 재밌는 플레이”는 리뷰와도 맞아떨어진다.
‘풍비박산’은 PC 플랫폼으로 스팀과 스토브 출시를 목표로 개발 중이며, 데모 및 출시 버전에는 마을의 손님을 맞이하는 장승과 인트로에 등장한 요괴의 왕 호랑이 등등 15~20종의 요괴가 더욱 준비되어 있다고 밝혔다. 향후 이 게임의 데모 및 얼리 엑세스가 시작되면 이 게임을 위한 단독 리뷰 기사도 준비할 예정이다.
이번 BIC 2025에서 만난 인디 리듬게임 ‘노이즈 캔슬러’, ‘풍비박산’, ‘one more mix’는 리듬게임이라는 장르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시였다. 세 게임은 단순히 노트를 정확하게 처리하는 기존의 문법을 넘어, 서사에 게임 플레이를 녹여내거나(‘노이즈 캔슬러’), 다른 장르와 성공적으로 결합하거나(‘풍비박산’), 혹은 독창적인 조작체계로 새로운 손맛을 선사하는(‘one more mix’) 등 각자의 방식으로 장르의 외연을 넓혔다.
이는 틀에 얽매이지 않는 과감한 시도가 가능한 인디씬의 저력이 리듬게임 장르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음을 증명한다. 잠시 주춤했던 리듬게임의 불씨를 되살린 것이 디제이맥스와 이지투온과 같은 주류 게임이었다면, 이제 그 불을 더욱 타오르게 만들 다채로운 장작은 바로 이들처럼 개성 넘치는 인디게임들이 될 것이다. 짧은 시연만으로도 강렬한 인상을 남긴 이 세 게임의 정식 출시가 더욱 기다려지는 이유다. 앞으로 또 어떤 독창적인 리듬게임이 우리를 놀라게 할지, 그 미래가 더욱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