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듬게임이 아니어도 괜찮아 – 장르의 발견을 도와줬던 인디게임들의 리뷰
‘리겜알리미’라는 이름은 거의 12년 넘게 리듬게임만 파고 살아온 필자의 취향에서 나온 닉네임이다. 반대로 말하면, 그 긴 시간 동안 다른 장르에는 좀처럼 손을 대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새로운 소식을 찾아도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은 리듬게임이었고, 게임쇼를 찾아가도 자연스럽게 리듬게임 부스부터 향했다. 다른 장르의 게임이 아무리 화제가 되더라도 “나중에 해봐야지”라는 말만 남긴 채 지나치는 경우가 많았다. 사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한동안 리듬게임 외의 스펙이 못 돌아갔던 컴퓨터를 가졌던, 제법 씁쓸하고도 현실적인 이유가 있었다.
그러다가 이제는 꽤나 좋은 사양의 PC를 얻을 수 있었고, 그 덕분에 이번 BIC는 꽤 좋은 ‘외출’의 기회가 됐다. 수백 개의 인디게임이 한 공간에 모이는 만큼, 익숙한 장르만 바라보고 있기에는 주변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게임들이 눈에 들어왔다. 특히 올해는 빅커넥터즈로 참여하면서 데모데이부터 오프라인 행사까지 이전보다 훨씬 많은 작품을 직접 체험하면소 평소라면 장르만 보고 지나쳤을 게임도 미션과 추천, 혹은 단순한 호기심을 계기로 키보드와 마우스를 잡게 됐고, 그 과정에서 생각보다 훨씬 많은 ‘의외의 재미’를 만날 수 있었다.
처음에는 리듬게임이 아닌 작품을 플레이한다는 것 자체가 조금 낯설었다. 무엇을 기준으로 재미를 판단해야 할지, 어떤 부분을 봐야 하는지도 익숙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처음 뵙겠습니다’ 덕분에 게임을 초심자의 시선으로 작품을 바라볼 수 있었다. 익숙한 문법에서 벗어나니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장르의 매력과 개발자의 아이디어가 하나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3 Words of BIC>의 두 번째 키워드는 ‘발견’이다. 이번에는 리듬게임이라는 익숙한 울타리를 벗어나, 12년 동안 한 장르만 바라봐온 필자가 BIC에서 새롭게 발견한 인디게임들을 소개해보려 한다. 장르도, 플레이 방식도 제각각이지만 “리듬게임만 하던 사람에게도 이건 재미있었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었던 작품들. 이제 그 낯설지만 즐거웠던 발견들을 하나씩 꺼내본다.

Greatest of BIC – 반지하게임즈의 <보존계>
첫 번째로 소개할 작품은 반지하게임즈의 <보존계>다. 사실 이 작품은 이번 ‘발견’이라는 키워드를 대표하는 게임을 넘어, 필자가 앞으로 활동 범위를 리듬게임에서 인디게임 전반으로 넓혀봐야겠다는 확신을 심어준 작품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올해 BIC의 GOAT(Greatest of All Time), 아니 ‘GOAT OF THE GOAT’라고 불러도 아깝지 않았다.
<보존계>는 보존계 수사관이 되어 심하게 훼손된 사건 기록을 복구하며 그 안에 감춰진 사건의 전말을 밝혀내는 추리게임이다. 처음에는 대부분의 내용이 훼손되어 전혀 알 수 없는 검은 줄만 그어진 문서만 주어지지만, 문맥을 통해 특정 단어를 유추해 직접 입력하면 해당 단어와 관련된 문장과 문단이 하나씩 복원된다. 그렇게 새롭게 드러난 진술을 다시 단서 삼아 다음 단어를 추리하고, 끊어진 사건의 조각을 이어가게 되어 수사관의 최종 질문에 답해 사건의 진실을 찾아가는 게임이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단서를 찾는 것이 아니라 단서 자체를 되살린다’는 발상이었다. 일반적인 추리게임이 제작자가 배치한 증거를 찾아 조합하는 방식이라면, <보존계>는 플레이어가 떠올린 단어 자체가 새로운 단서로 이어지는 방식을 택했다. 단어를 거슬러 올라가면서 예상하지 못했던 단서가 복구되는 순간은 그야말로 쾌감. 선택지 안에서 정답을 고르는 방식과 달리 추리의 자유도가 높아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낡은 사건 기록을 복원하는 듯한 몰입감도 강하게 느껴졌다.
흑백을 중심으로 한 화면 속 텍스트 위주의 구성도 게임의 분위기와 잘 맞아떨어지게 되면서 하나의 단어가 문장을 되살리고, 그 문장이 다시 새로운 추리로 이어지는 과정 자체가 <보존계>만의 독특한 미학을 완성한다.
스토리 라인도 제법 실감이 난다. 필자가 체험한 파트 2까지의 분량은 정말 실제로 있을 법한 사건들을 주로 다뤘다. 파트 1에는 이른바 ‘자살 모임‘을 연상캐하는 사건과 더불어, 파트 2에는 백신 불신을 다루는 부부의 이야기를 다뤘다. 실제로 뉴스 혹은 sns 피드에서 스쳐 지나가는 사건들을 직접 복원하면서 느끼게 되니 저절로 섬뜩함을 느끼게 된다. 이미 SNS의 사이버 불링과 사이버 렉카라는 현실의 소재로 했던 <페이크북>의 완성도가 이번 <보존계>에서도 드러나게 되었다.
데모데이 당시에도 필자는 “이 게임은 어느 부문에서든 상을 받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할 정도”라는 극찬을 남겼고, <보존계>는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구글 플레이와 함께한 인디 페스트 어워즈에서 최종 1위를 차지한 데 이어, BIC 어워즈에서도 일반 부문 실험성 대상인 ‘Excellence in Experimental’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개인적인 ‘발견’이 공식적인 수상으로까지 이어졌다는 점에서 <보존계>는 필자에게 새로운 게임 세계의 문을 열어준 특별한 작품으로 남았다. 단순히 게임 하나를 발견한 것을 넘어, 추리 게임이라는 새롭고도 자신있는 장르와 앞으로 더 많은 인디게임을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기에, 올해 BIC에서 단 하나의 작품만 꼽으라고 한다면 필자의 대답은 망설임 없이 <보존계>라 답할 수 있다.

세기말 세상 속 ‘우리들의 블루스‘ – Rain98
두 번째 이야기는 C#4R4CT3R의 Rain98이다. Rain98은 이번 BIC에서 총 8석 규모의 부스를 마련해 멀리서도 눈에 띄었던 작품으로, 지나가다 특유의 분위기에 이끌려 자연스럽게 플레이하게 됐다.
Rain98은 1998년 도쿄를 배경으로 한 로우파이 분위기 속 로맨스 어드벤처 게임으로, 모종의 사건으로 1998년의 과거에 떨어진 플레이어가 세상을 멸망시킬 힘을 가진 존재로 불리는 소녀 ‘레이나’를 만나 그녀와 함께 세상을 멸망시키기 위한 100개의 천사 스티커를 모으는 기묘한 동거를 시작한다.
플레이어는 캡슐 토이를 만들어 돈을 벌거나 레이나의 집을 청소하는 등 레이나의 생활을 책임지고, 푸른 빛이 감도는 도시 곳곳을 돌아다니며 미니게임과 함께 여러 사건을 경험하게 된다. 하지만 레이나의 감정 상태에 따라 상황이 급격히 위험해질 수 있고, 시간이 흐를수록 플레이어의 기억과 현실 역시 점차 불분명해진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단연 비주얼과 분위기였다. 이 게임은 화려한 색채 대신 우울함을 상징하는 파란색 계열을 중심으로 화면을 구성했는데, 이것이 단순히 음울하게만 느껴지지는 않는, 부슬부슬 내리는 비와 시부야의 네온사인, 그리고 오래된 라디오 속 뉴스와 잔잔한 로우파이 음악이 어우러지며 마치 ‘블루스’라는 음악처럼 고요하면서도 어딘가 쓸쓸한 정서를 만들어낸다.
특히 레이나의 성우를 맡은 리오 츠치야가 레이나의 고요하면서도 잠잠한, 그리고 묘한 섬뜩함을 부르는 연기를 통해 이 세계관과 레이나의 매력을 더욱 끌어올랐다. 세기말인 1999년을 앞둔 1998년이라는 시대적 배경과, 멸망의 힘을 품은 듯한 레이나와의 일상이라는 조합 역시 묘한 대비를 이룬다.
세계가 무너질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코인 세탁소에서 세탁물을 챙기고, 레이나와 함께 거리를 걷는 소소한 일상이 오히려 더 크게 다가온다. 그래서 Rain98은 심리 스릴러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몰락을 향하는 시대 속 두 사람이 서로를 공명하는듯한, 그야말로 세기말 속 ‘우리들의 블루스’처럼 느껴졌던 작품이었다. 이 레이나와의 일상이 어떤 모습으로 마무리될지, 향후의 발매가 더욱 기대되는 대목이다.

낙원과 잔혹은 한 띄어쓰기 차이 – 이세계 증후군
세 번째 이야기는 (이)세계 연구소의 <이세계 증후군>이다. 제목부터 흥미로운게, 우리가 흔히 판타지의 낙원을 떠올릴 때 사용하는 ‘이세계’와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을 뜻하는 ‘이 세계’. 고작 띄어쓰기 하나의 차이지만, 이 게임은 그 사이에 놓인 감정과 차원의 간극을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이세계 증후군>은 불안한 미래와 끝없는 경쟁, 비교, 그리고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현실에 지친 청년 모두의 이야기를 담은 스토리 어드벤처 게임이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어진 어느 날, 주인공은 정체불명의 ‘이세계 도서관’ 초대장 받게 된다. 암울한 현실에 도망치듯이 도서관에 이끌려 온 주인공이 수많은 이세계가 존재하는 신비로운 도서관에 발을 들이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게임은 화려한 색채로 표현된 ‘이세계’와 흑백으로 그려진 ‘이 세계’를 오가며 퍼즐을 풀고 이야기를 따라가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도서관의 책 속에 있는 화려한 ‘이세계‘에서는 모두에게 존경받는 판타지 세계관 속 용사가 되거나, 모두에게 사랑받는 배우가 되는 등 현실에서는 쉽게 얻기 힘든 삶을 경험할 수 있다. 반대로 흑백의 ‘이 세계‘는 우울과 불안, 실패와 좌절이 가득한 현실을 그대로 마주하게 한다.
이 극명한 대비는 단순한 미술적 연출을 넘어 게임의 핵심 질문으로 이어진다. 현실이 괴롭다면 더 행복해 보이는 세계로 도망치는 것이 정답일지, 아니면 아무리 절망적인 현실이라도 그 안에서 살아갈 이유와 희망을 찾아야 할지를 말이다.
때문에 <이세계 증후군>은 단순히 ‘이세계로 떠나는 이야기’라기보다, 우리가 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지를 되묻는 작품에 가깝다. 화려한 낙원처럼 보이는 곳에도 다른 형태의 잔혹함이 숨어 있을 수 있고, 반대로 잿빛 현실 속에서도 살아갈 이유를 발견할 수 있다.
결국 게임 명에서 드러났듯이 ‘이세계’와 ‘이 세계’는 한 칸의 띄어쓰기 차이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한 칸 사이에는 도피와 직면, 낙원과 현실, 행복과 절망이 함께 놓여 있다. 그중 어느 쪽을 선택할지는 게임의 엔딩에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플레이어가 스스로 찾아야 할 답일 수도.

신에게 보호받는 세계 속 누가 이단인가? – 이단심판관 쉐퍼드
네 번째 이야기는 네로우딥의 <이단심판관 쉐퍼드>다. 이번 BIC에서 필자가 다룬 작품 가운데 유일한 19금 게임으로, 단순히 잔혹한 표현 때문만이 아니라 종교와 광기, 심리적 공포를 뒤섞은 기괴한 세계관 자체가 강렬하게 기억에 남았다. 실제로 작품은 심리적 공포와 극단적인 폭력·고어 표현 등을 포함한 미스터리 스릴러를 표방한다.
플레이어는 종교국가 ‘부크리움’의 외딴 마을에 파견된 이단심판관 쉐퍼드가 되어 마을에서 벌어진 이단 사건을 조사한다. 올리브로 유명한 이 외딴 마을에 이단의 흔적을 찾아내는 것이 쉐퍼드의 임무. 부크리움 속 15명의 등장인물을 심문하고 사건 현장을 수색해 증거와 진술을 모으며, 퍼즐을 풀어 사건을 재구성해 최종적으로는 용의자의 거짓말과 이단의 정체을 밝혀내고 ‘유죄’와 ‘무죄’를 직접 판결해야 하며, 이 선택에 따라 이야기와 결말도 달라진다.
스토리에는 쉐퍼드의 상관이 위기에 처한 것과 괴한에게 습격을 당해 납치를 당하는 쉐퍼드의 긴급 상황까지 다뤄 게임의 긴박함을 더욱 살려준다.

이 작품의 특징은 쉐퍼드의 특수 능력을 깨우는 ‘신 파우더’에서 나타난다. 이 신 파우더를 흡입하면 전능의 감각과 하나가 되는, 후각이 극도로 강화되어 평범한 시야로는 발견할 수 없었던 흔적을 냄새로 찾아내어 막혀 있던 심문을 돌파할 수 있다.
앞서 소개한 <보존계>와 같이 평범한 수사 속 증거와 진술을 조합했다면, 여기서는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라는 명제 아래 감각 자체가 새로운 추리 수단이 되는 셈이다. 특히 파우더를 사용할수록 화면은 현실적인 색채에서 점점 멀어지고, 극단적으로 화려하면서도 기괴한 비주얼로 변한다. 흡입했던 짧은 순간만으로도 쉐퍼드의 괴로운 모습을 보여줘 쉐퍼드 역시 점차 현실과 멀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전지전능한 신이 보호한다고 믿는 세계에서 진짜 이단은 과연 누구일까? 심판받는 사람인지, 심판하는 쉐퍼드인지, 아니면 그 모든 판단의 기준을 만든 세계 그 자체인지. <이단심판관 쉐퍼드>는 사건의 범인을 찾는 것을 넘어 ‘누가 누구를 심판할 자격이 있는가’라는 질문까지 던지는, 이번 BIC에서 가장 기묘하고 강렬했던 추리게임 중 하나였다.

당신이 알던 동화는 진실일까? – 동화부검
다섯 번째 이야기는 Team.MT의 <동화부검>이다. 이 작품은 플리더스의 오프라인 FGT에서 처음 만난 게임이었다. 이 게임은 “우리가 알고 있는 동화의 내용이 사실은 누군가에 의해 보기 좋게 재구성된 이야기라면?”이라는, 바로 이 의심에서 출발하는 포인트 앤 클릭 추리게임이다.
게임 속에서 묘사되는 동화는 단순한 허구가 아닌, 실제로 벌어진 살인사건이 오랜 시간 사람들의 입을 거치며 그럴듯한 이야기로 포장됐고, 그 결과 하나의 ‘동화 세계’가 만들어졌다는 설정이다. 플레이어는 신입 사신 ‘페로’가 되어 해당 세계에 들어가 조연들의 진술을 듣고, 현장에 남겨진 증거품을 수집하게 된다.
이렇게 모은 증거와 진술을 서로 연결하면서 사건의 전말과 모순을 찾아내고, 아름답게 포장된 이야기 아래 숨겨진 진실을 하나씩 찾아내는, 말 그대로 이야기를 ‘부검’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인상 깊었던 것은 이 작품이 바라보는 동화의 정의였다. 우리는 빨간 모자의 늑대가 할머니를 잡아먹었기에 배 속에 돌을 넣는 벌을 받았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동화부검>은 다른 질문을 던진다. 늑대는 정말 처음부터 할머니를 죽여 돌덩이들이 위에 박힐 정도로 벌을 잗은 악한 존재였을까? 백설공주를 구해준 일곱 난쟁이 역시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은 순수한 선의의 존재였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이렇듯 어릴 적에는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선과 악의 구도가 전혀 다른 사건과 반전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동화부검>의 재미는 이미 결말까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이야기를 하나의 사건 현장으로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정말 우리가 알고 있는 이야기가 진실인가?”라고 묻는 점에서 시작된다. 아름다운 동화책의 페이지를 한 장씩 뜯어내듯 그 아래 숨은 잔혹한 현실을 확인하는 과정. 누가 거짓말을 했고, 누가 이야기에서 지워졌으며, 왜 사건은 우리가 알고 있는 동화로 남게 됐는지, 이 이야기를 다시 쓰면서 그 내막을 밝혀내는 일은 이제 플레이어의 몫이라고 볼 수 있다.

일상 속 컴퓨터, 발상의 전환 – <폴더 탈출>, <영상편집자>, <레인>
여섯 번째 이야기는 한 작품이 아니라 세 작품으로 준비했다. 팀 크럭스의 <폴더 탈출>, 리턴트루의 <영상편집자>, 그리고 원밀리세컨드의 <레인(LAIN)>이다.
장르와 플레이 방식은 서로 다르지만, 이 세 작품에는 분명한 공통점이 있으니 바로 우리가 컴퓨터를 사용하며 아무렇지 않게 접해온 기능을 그대로 게임의 규칙으로 바꿨다는 것이다.
가장 직관적인 작품은 <폴더 탈출>이다. 게임 화면부터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Windows 파일 탐색기를 그대로 보이면서도 여기서는 평범한 파일 관리 기능이 모두 퍼즐의 도구가 된다. 파일 이름을 바꾸거나 확장자를 변경하는 등 익숙한 행동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활용하면서 “이 기능을 이렇게 쓸 수도 있구나”라는 발상의 전환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실험성을 인정받아 올해 BIC 어워즈 루키 부문의 실험작 수상인 ‘Excellence in Experimental’ 수상작으로도 선정됐다.
<영상편집자>는 이름 그대로 영상 편집 프로그램의 개념을 퍼즐 플랫포머로 옮겼다. 플레이어가 캐릭터의 움직임을 하나의 ‘클립’으로 촬영하고, 이를 잘라내고 배치해 최종적으로 목표 지점에 도달하는 영상을 완성한다. 촬영 가능한 분량에는 제한이 있고, 크로마키처럼 별도로 촬영한 트랙을 겹쳐 길을 만들어내는 방식도 등장한다. 결국 캐릭터를 얼마나 잘 움직였느냐뿐 아니라, 얼마나 효율적으로 촬영하고 편집했느냐가 퍼즐의 해답이 된다.
마지막 <레인>은 이미지 편집 프로그램에서 익숙한 ‘레이어’를 게임 세계 그 자체로 바꾼다. 벽이 가로막고 있다면 해당 레이어를 꺼버리고, 길이 맞지 않는다면 레이어의 순서를 바꿔 오브젝트의 관계를 변화시킨다. 화면에 표시된 레이어 창이 단순한 UI가 아니라 실제 세계를 조작하는 장치가 되는 셈이다.
파일 탐색기, 영상 편집, 그리고 레이어. 평소에는 작업을 위한 기능에 불과했던 것들이 세 개발자의 시선을 거치자 하나의 퍼즐이 됐다. 당연하게 사용하던 컴퓨터의 기능에서 새로운 놀이를 찾아낸다는 것, 이것이 세 작품을 이번 ‘발견’의 이야기에서 함께 묶은 이유다.

신들의 계시를 받은 사나이들의 Gun법 – 배드애스가르드
일곱 번째 이야기는 <배드애스가르드>다. Badass라는 제목부터 범상치 않은 이 작품은 북유럽 신화의 세계관에 샷건과 화끈한 화력을 얹은 3인칭 로그라이트 액션 슈터다. 룬과 마법, 그리고 총기가 한데 뒤섞인 세계에서 신들의 은총을 받아 적을 쓸어버린다는 설정부터 이미 게임이 어떤 방향을 추구하는지 명확하다. 한마디로 북유럽 신화에 ‘건(Gun)법’을 더한 마초들의 전장이다.

플레이어는 매번 새롭게 구성되는 전장에서 적을 상대하며 오딘, 토르 등 북유럽 신들의 축복을 얻어 자신의 빌드를 강화한다. 여기에 맵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유물 ‘오파츠(Oparts)’와 룬, 마법을 조합해 샷건의 성능을 끊임없이 변화시킬 수 있다. 처음에는 평범한 무기로 시작하지만 조합이 쌓일수록 한 발의 공격이 화면을 뒤덮을 정도로 강력해지면서, 생존을 위한 전투가 어느 순간 전장을 통째로 날려버리는 사나이들의 ‘마초 마초맨 쇼‘로 변한다.
특히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이 게임이 ‘강해지는 재미’를 굉장히 직관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이다. 복잡한 계산을 이해하지 않더라도 공격 범위가 넓어지고, 탄환이 늘어나고, 화면을 가득 채우는 폭발을 보는 것만으로 내가 얼마나 강해졌는지 즉시 체감할 수 있다. 로그라이트 특유의 빌드 구성과 슈터 특유의 타격감이 자연스럽게 맞물리는 부분이다.
정식 버전에서는 최대 4인의 멀티플레이를 지원할 예정이며, 서로의 빌드를 조합해 강력한 시너지를 만들면서도 아군 오사와 폭발로 인해 오히려 전장이 난장판이 될 수도 있다는 점까지 이 작품다운 호쾌함과 유쾌함으로 이어진다. 여기에 갑옷과 투구, 망토 등을 활용한 바이킹 커스터마이징과 아홉 세계를 탐험하는 던전 구성까지 준비돼 있어 사나이들의 모험심을 더욱 불러들이킨다.
북유럽 신화의 장엄함보다는 샷건의 폭발을 앞세운 <배드애스가르드>. 복잡하게 고민하기보다 강력한 무기를 만들고 적을 시원하게 쓸어버리는 재미에 충실한 작품이었다. 신들의 은총이 검과 창으로만 내려올 필요가 있을까. 이 게임의 은총은 바로 샷건, 아주 훌륭한 은총이자 대화수단이라 볼 수 있겠다.

Text only – 토라이즌 텔레콤
여덟 번째 이야기는 스카고 게임즈의 <토라이즌 텔레콤>이다. 이 게임은 화려한 3D 그래픽도, 사실적인 오브젝트도 없다. 대신 화면을 가득 채우는 것은 말 그대로 ‘글자’다.
<토라이즌 텔레콤>은 텍스트로 이루어진 디지털 세계를 배경으로 한 FPS 게임으로, 적과 배경, 각종 오브젝트까지 수많은 글자를 조합해 표현한다. 예를 들어 의자는 ‘의자’라는 글자들이 모여 의자의 형태를 이루고, 자폭병이 폭발하면 화려한 폭발 이펙트 대신 ‘폭발!’이라는 글자가 화면을 휘몰아친다.
총격과 전투 역시 문자와 기호가 끊임없이 튀어나오는 모습은 마치 오래된 컴퓨터 터미널 속에서 플레이하는 듯한 독특한 감각을 만든다.

사운드 역시 이러한 분위기에 힘을 보탠다. 1980~90년대 전화통신이나 모뎀을 떠올리게 하는 시스템음과 전자음이 텍스트로 구성된 화면과 맞물리며 작품 특유의 아날로그하면서도 디지털적인 분위기를 완성한다.
이렇듯 비주얼만 놓고 보면 상당히 실험적인 작품이지만, 막상 직접 플레이해보면 FPS로서의 타격감과 속도감도 제법 살아 있어 의외로 손에서 쉽게 놓기 어렵다.
무엇보다 재미있는 부분은 ‘텍스트만으로도 어디까지 게임의 세계를 표현할 수 있는가’라는 단순한 발상을 끝까지 밀어붙였다는 점이다. 글자는 원래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지만, <토라이즌 텔레콤>에서는 건물이 되고, 적이 되고, 총알과 폭발까지 된다. 텍스트밖에 없는데, 분명히 FPS다. 설명만 들으면 괴상하지만 직접 보면 곧바로 이해되는 작품. 그래서 그런지 막상 해보면 생각보다 재미있다. 이번 BIC에서 ‘발견’이라는 말이 또 잘 어울렸던 하나의 독특한 게임이었다.

예술 그 자체 – 킨츠기
마지막 이야기는 Studiohoho의 <킨츠기(Kintsugi)>다. 이번 BIC에서 ‘예술’을 게임 하나로 꼽으라면 필자는 망설임 없이 이 게임을 선택할 것 같다. 놀랍게도 <킨츠기>는 약 10분 분량의 학생 프로젝트로 제작된 2D 플랫폼 게임으로, 일본의 전통 수복 기법이자 철학인 ‘킨츠기’에서 영감을 받아 황금의 힘에 의해 망가진 세계를 똑같은 황금의 힘으로 다시 이어간다는 이야기를 담았다.
플레이어는 어느 날 세상을 뒤덮은 기이한 황금 현상에 영향을 받은 젊은 약제사 ‘쿄(Kyō)’가 된다. 오랜 세월 인간의 탐욕으로 자연과 생명은 파괴됐고, 세상에는 사람들을 황금으로 굳어가는 정체불명의 현상이 발생한다. 쿄 역시 그 영향을 받지만, 동시에 황금을 조종해 부서진 것을 고치고 생명을 되돌리는 힘을 얻게 된다. 플레이어는 황금을 투사해 무너진 공간을 복구하고 새로운 발판을 만들며 여러 지역을 지나 이 힘의 기원과 정체를 찾아간다.

무엇보다 <킨츠기>는 정적이면서 웅장하고, 고요하면서 화려하다. 황금빛이 번져가며 죽어 있던 풍경에 생명력이 돌아오는 연출과 환경에 맞춰 흐르는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이 절묘하게 맞물린다. 공식 설명 역시 배경과 상호작용해 세계에 생명과 아름다움을 되돌리고, 음악과 환경적 스토리텔링을 통해 감정적인 경험을 전달하는 것을 작품의 핵심으로 내세운다.
특히 기억에 남은 것은 폭포를 거슬러 올라가는 장면이었는데, 거센 물살을 헤치며 황금의 힘으로 잉어를 붙잡고 계속해서 위로 올라가다 마침내 폭포 끝에 도달하는 순간, 그동안 억눌러온 사운드와 연출이 한꺼번에 ‘팍’ 터져 나온다. 짧은 플레이 속에서도 소름이 돋을 만큼 강한 카타르시스를 느꼈던, 개인적으로 이 작품 최고의 명장면이었다.

그리고 아름다운 황금은 동시에 의문을 남긴다. 길을 따라가다 보면 황금에 뒤덮여 굳어버린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자연스럽게 쿄가 지닌 힘은 정말 치유만을 위한 것인지 생각하게 된다.
부서진 것을 황금으로 이어 새로운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킨츠기’처럼, 이 힘은 망가진 세계를 되살리는 축복일까. 아니면 인간이 만들어낸 또 다른 상처일까. 짧은 시간 안에 미술과 음악, 플레이와 주제의식을 하나로 연결해낸 <킨츠기>. 이번 BIC에서 만난 ‘고요한 화려함’이자, 예술 그 자체라고 부르고 싶었던 작품으로 ‘발견’의 마지막을 장식하기에 더없이 어울렸다.
<보존계>에서 시작해 , <이세계 증후군>, <이단심판관 쉐퍼드>, <동화부검>, 그리고 <영상편집자>부터 <레인>까지 컴퓨터의 익숙한 기능을 전혀 다른 놀이로 바꿔낸 작품들과 <배드애스가르드>, <토라이즌 텔레콤>, 마지막 <킨츠기>까지. 이번 ‘발견’에서는 리듬게임이라는 익숙한 영역에서 잠시 벗어나, 그동안 필자가 쉽게 손대지 않았던 장르의 작품들을 따라가 봤다.
그 과정에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은 단순히 ‘재미있는 게임을 많이 찾았다’는 것이 아니었다. <보존계>를 통해 추리게임이라는 새로운 취향을 발견했고, 과 <이세계 증후군>에서는 이야기와 분위기만으로 플레이어를 끌어당기는 힘을 느꼈다. <폴더 탈출>이나 <레인>처럼 일상의 사소한 기능 하나도 개발자의 시선에 따라 완전히 새로운 게임이 될 수 있었고, <킨츠기>에서는 게임이 플레이를 넘어 하나의 예술적 경험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12년 동안 리듬게임을 바라보며 만들어진 ‘리겜알리미’라는 이름은 그대로지만, 이제 그 시선이 리듬게임에만 머물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오히려 다른 장르의 게임을 만나고 이해할수록, 지금까지 너무 익숙해서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리듬게임 역시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됐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3 Words of BIC>의 마지막 단어, ‘확장(擴張)’으로 이야기가 이어진다.
BIC에서 게임을 ‘발견’했다면, 부산 인디 웨이브 컨퍼런스에서는 게임을 바라보는 생각 자체가 확장됐다. 그중에서도 넥슨게임즈 IO본부 김용하 본부장의 ‘게임은 어떻게 세계가 되는가’라는 강연은 필자에게 익숙했던 리듬게임을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게임은 단순히 플레이하는 콘텐츠에서 끝나는가. 캐릭터와 음악, 이야기와 반복되는 플레이 경험, 그리고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쌓아 올린 관계까지 하나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다면, 한국 리듬게임은 지금 어떤 세계를 만들고 있으며 앞으로 무엇을 더 확장해야 할까.
<3 Words of BIC>의 마지막 이야기, 확장(擴張) : K리겜 탐구생활 – 리듬게임 IP의 과제. 김용하 본부장의 ‘게임은 어떻게 세계가 되는가’를 들으며 떠올린 질문을 시작으로, 이번에는 게임을 넘어 ‘리듬게임 IP는 어떻게 만들어지 되는가’를 이야기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