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인디 웨이브 컨퍼런스 內 넥슨게임즈 IO본부 김용하 본부장의 ‘게임은 어떻게 세계가 되는가’를 들으며
그동안 리듬게임은 ‘음악을 플레이하는 게임’이라는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2020년대에 급변하는 게임 시장처럼, 리듬게임 시장 역시 이런 큰 변화에 뛰어들고 있다.
단순히 음악 업데이트나 추가 콘텐츠를 제공하던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스토리와 캐릭터를 강화하고 공연, 팝업스토어, 굿즈, 콜라보레이션 등 게임 외부로 활동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국내에서는 오프라인 콘서트인 ‘DJMAX MIRACLE’과 더불어 다양한 오프라인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디제이맥스 시리즈가 대표적으로 꼽힐 수 있으며, 식스타 게이트를 비롯한 여러 작품들도 각자의 방식으로 IP 확장에 도전하고 있다.
여기서 ‘IP’는 원래 지식재산권을 의미하는 전문 용어지만, 서브컬처 중심의 게임 업계에서는 하나의 작품이 보유한 캐릭터, 세계관, 음악, 스토리, 브랜드 등을 기반으로 후속작은 물론 애니메이션, 웹툰, 공연, 굿즈, 콜라보레이션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할 수 있는 자산이라는 의미로도 자주 사용된다.
이처럼 오늘날 게임은 단순히 한 번 즐기고 끝나는 상품이 아니라, 이용자가 다양한 방식으로 지속적으로 경험하고 관계를 맺을수 있는 하나의 ‘세계’로 자리잡고 있다.
이번 BIC 2026의 전야제, 부산 인디 웨이브 컨퍼런스에서 넥슨게임즈 IO본부 김용하 본부장은 ‘게임은 어떻게 세계가 되는가’라는 주제로 이러한 변화를 짚었다. 콘텐츠가 넘쳐나고, AI의 발전으로 게임 개발의 진입장벽마저 낮아진 지금, 치열한 경쟁 환경 속에서 “왜 이 게임이어야 하는가”라는 고민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블루 아카이브>라는 방대한 세계관을 완성한 개발자의 이야기는, 리듬게임 분야에 관심이 깊은 필자에게도 여러 가지 질문을 던졌다.
<3 Words of BIC>의 마지막 키워드인 ‘확장’에서는 김용하 본부장의 강연을 출발점으로 삼아, 앞으로 한국 리듬게임이 단순한 게임을 넘어 지속 가능한 IP로 성장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요소는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게임은 어떻게 하나의 ‘세계’가 되는가

김용하 본부장은 과거 <스타크래프트>나 <리그 오브 레전드>처럼 모두가 함께 즐기던 ‘국민게임’ 중심의 문화에서, 최근에는 각자의 취향을 깊게 파고드는 팬덤 중심의 시장으로 게임 생태계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한국의 애니메이션 & 게임 페스티벌(AGF, Anime & Game Festival), 일본의 코믹마켓 등 게임과 서브컬처 팬덤이 오프라인 공간에서 만나는 사례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특히 AK플라자 홍대점은 서브컬처 중심의 공간으로 변모한 이후, 2021년 대비 매출이 약 3배 가까이 증가하는 성과를 기록했다. 과거에는 비주류로 분류됐던 취향이 팬덤을 형성하면서 하나의 시장과 공간을 창출해낸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게임을 하나의 IP이자 ‘세계’로 성장하게 만드는 것일까. 김 본부장은 이에 대해 ‘반복되는 행동’, ‘기억에 남는 상징’, 그리고 ‘관계’라는 세 가지 간명한 기준을 제시했다. 사용자가 게임 내에서 어떤 행동을 반복하는지, 무엇을 떠올리게 되는지, 그리고 플레이어가 캐릭터나 다른 이용자와 어떤 관계를 맺는지가 곧 그 IP를 오래 기억하게 한다는 설명이다.
특히 서브컬처 게임에서는 ‘나는 이 세계에서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중요하다. 김용하 본부장이 대표적으로 개발한 <블루 아카이브>의 경우, 플레이어를 ‘선생님’으로 설정하고, 태블릿 매체의 ‘싯담의 상자’와 1인칭 시점 일러스트, 모모톡 등 다양한 요소를 이 시점에 맞춰 설계했다. 단순히 설정과 캐릭터를 많이 만드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플레이어가 그 세계 안에서 어떤 생활을 하고 누구와 관계를 맺는지, 즉 ‘세계관 속 라이프스타일’까지 고민한 결과라 할 수 있다.
결국 가장 중요한 점은 단순히 성공한 게임의 겉모습만 따라가는 것이 아니다. 한 장면만 보더라도 “이것이 바로 우리 게임의 세계다”라고 느껴질 만큼, 비주얼과 시스템, 캐릭터와 상호작용이 모두 한 관점을 공유해야 한다. 이렇게 공유된 관점으로 게임이 하나의 콘텐츠를 넘어, 독자적인 ‘세계’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출발점이자 연결점이 마련된다.
AI 시대, 결국 경쟁력은 ‘취향과 안목’에서 나온다

김용하 본부장은 생성형 AI의 발전으로 인해 이미지와 영상뿐만 아니라 게임 개발에 소요되는 비용과 시간까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소규모 개발자나 인디게임 시장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김용하 본부장은 넥슨게임즈 IO본부에서 진행한 사내 게임잼 사례를 소개했다. 1~3명으로 구성된 51개 팀이 단 이틀 만에 48개의 플레이 가능한 미니게임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는 예전이라면 아이디어 단계에서 그쳤을 기획도 이제는 매우 짧은 시간 안에 실제 게임으로 구현해 직접 시험해볼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만드는 난이도가 쉬워졌을뿐, 돋보이는 난이도는 더욱 어려워졌다. 2025년 스팀에 출시된 1만 9,112개의 신작 중 9,327개가 10개 미만의 리뷰를 획득하는 등, 게임을 ‘만드는 것’이 쉬워진 만큼 ‘선택받는 것’은 오히려 더 어려워졌다고 김용하 본부장은 지적했다.

김용하 본부장은 AI가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한 만큼 익숙한 표현이나 답이 명확한 문제에서는 강점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답이 없는 ‘취향’의 영역에서는 한계가 명확하다고 덧붙였다.
AI는 무엇을 좋아하거나 싫어할 줄 모르지만, 사람은 각자의 경험과 성격, 편향에 따라 서로 다른 선호를 가진다는 점을 이유로 들면서 결국 AI가 학습하는 데이터 역시 인간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라는 한계를 드러내면서도, ‘정답이 없는’ 영역을 탐구하고 새로운 기준을 세우는 일은 여전히 사람의 역할로 남아 있다고 강조했다.
여기서 김용하 본부장은 ‘취향’이 ‘안목’으로 발전한다는 점을 짚었다. 단순히 “좋다”, “싫다”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왜 좋은가’를 스스로 설명하기 시작하면 자신만의 기준이 생긴다는 것이다. 직접 만들어보고, 비교하고, 이유를 말하고, 다시 선택하는 ‘만들기 → 비교하기 → 이유 말하기 → 다시 고르기’의 반복이 바로 안목을 만드는 과정이며, 이것이 디렉팅의 본질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김용하 본부장은 무려 44번의 도전 끝에 자신만의 색깔과 개성을 찾아, 최대 흥행을 이끈 ‘멧챠 카멜레온’을 대표적 사례로 들었다.
결론적으로,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새로운 ‘유레카’를 자동으로 찾아주는 일은 없다. 이미 시장에서 성공한 요소를 단순 복제하기보다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왜 좋아하는지에 대해 끝까지 고민하며, 취향을 차별화해 고도화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렇게 탄생한 ‘자신만의 맛’이 결국 독창적인 세계관과 강력한 팬덤을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는 것이 이번 컨퍼런스에서 김용하 본부장이 전한 핵심 메시지였다.
그렇다면 이를 리듬게임에 대입한다면?
그렇다면 김용하 본부장이 언급한 ‘게임이 하나의 세계가 되는 과정’을 리듬게임에 적용하면 어떤 모습일까. 대표적인 사례로는 대한민국 PC 리듬게임 가운데 가장 적극적으로 IP 확장에 나선 네오위즈의 DJMAX 시리즈(이하 디맥)를 들 수 있다.
디맥에서 플레이어가 얻는 기본 경험은, 시리즈의 모토인 대중적이면서도 다양한 음악 장르를 반복해 플레이하는 데서 출발한다. 하지만 유저들은 단순히 곡 자체만을 기억하지 않는다. 각 곡의 BGA와 그 속 캐릭터, 채보를 직접 플레이하면서 느낀 감정, 20년 넘게 이어진 시리즈만의 음악적 색채까지 모두 함께 기억하게 된다. 음악을 중심으로 다양한 창작물이 누적되고, 그 경험을 반복하면서 자연스럽게 ‘디맥다움’이 형성된다. 김용하 본부장이 이야기한 ‘반복되는 행동’이 리듬게임에서는 ‘음악을 플레이하는 일’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고 볼 수 있다.

최근에는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시리즈 전체를 하나의 세계관으로 엮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V EXTENSION’ 시리즈를 ‘Verse.1’로, 이후 ‘V LIBERTY’를 ‘Verse.2’로 전개하면서, 각각 흩어져 있던 악곡과 BGA의 설정들이 하나의 스토리로 연결되기 시작했다.
엘 클리어, 엘 페일 등 기존 캐릭터들은 물론, 다인, 레나, 리룰루와 같은 기존 시리즈의 인물들이 새롭게 조명되거나, 요르문간드 등 세계관만의 오리지널 캐릭터가 등장하는 등 단순 영상과 악곡 속에만 머무른 디제이맥스 속 캐릭터들은 이제 완성도 있는 세계관과 서사를 이루는 축으로 발전하고 있다.
게임 밖에서도 변화는 이어진다. 오프라인 공연 ‘DJMAX MIRACLE’에서는 게임 안에서 수없이 플레이했던 음악을 실제 아티스트의 라이브로 다시 경험할 수 있으며, 팝업스토어에서는 캐릭터와 시즌의 추억이 굿즈와 공간을 통해 확장된다. 이처럼 ‘음악 → 반복 플레이 → 캐릭터와 서사 → 팬덤 경험’이라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면서 자연스럽게 IP의 초석 역시 만들어지고 있는 셈이다.
두 번째는 ‘기억에 남는 상징’이다. 리듬게임에서 상징은 단순히 특정 캐릭터에 국한되지 않는다. 노트의 형태, 판정음, UI 디자인, 선곡 화면, BGA의 미술 스타일, 로고, 그리고 독특한 음악적 색채 등 다양한 요소가 모두 여기에 해당한다. 영상과 음악의 몇 초 만으로도 “이 게임이구나”라는 인상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단순히 인기 있는 음악이나 유행하는 캐릭터 이미지를 들여오는 것만이 아닌, 음악과 미술, 인터페이스, 플레이 경험이 한결같고 개성있는 취향으로 어우러질 때 비로소 기억에 남는 게임의 모습이 형성된다.
마지막이자 가장 중요한 과제는 ‘관계’다. 플레이어는 이 게임 세계에서 어떤 존재인가? 캐릭터와는 어떤 유대감을 갖게 되는가?라는 질문에서 더 나아가, 음악을 만든 아티스트나 개발자, 다른 플레이어들과는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를 더욱 생각하게 된다.
리듬게임은 본질적으로 음악가와 유저 간의 긴밀한 관계가 두드러지는 장르로 좋아하는 작곡가 때문에 게임을 시작하기도 하고, 게임에서 알게 된 아티스트의 다른 작품을 찾아 다른 리듬게임에 입문하거나 혹은 아예 다른 장르로 입문해 나서기도 한다. 또한 오프라인 공연에서는 게임의 음악을 매개로 개발자, 아티스트, 유저들이 한자리에 모이면서 이런 유기적 관계 자체가 리듬게임만의 차별화된 IP 자산이 될 수 있다.
여기에 김용하 본부장이 강조한 마지막 과제, 즉 ‘취향과 안목’이라는 요소가 남아 있다. AI 기술의 발전으로 작곡·이미지·영상·채보 등의 제작 진입 장벽이 점점 낮아질수록, 단순히 ‘곡 수가 많다’, ‘캐릭터가 예쁘다’는 만으로는 차별성을 가지기 어렵다. 어떤 음악을 선택하는지, 왜 이런 채보를 만들었는지, 그리고 어떤 캐릭터와 세계관이 각각의 음악에 어울리는지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단순히 많이 만드는 능력보다,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덜어낼 것인지 결정하는 안목이 더욱 중요한 시대다.
결국 디맥의 방식을 그대로 따라 공연을 열거나 팝업스토어를 운영한다고 해서 또 하나의 디맥이 탄생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김용하 본부장의 말을 리듬게임 특유의 감각으로 다시 풀면, 당신의 리듬게임은 어떤 고유한 매력을 가지고 있는가?라는 핵심 질문부터 답할 준비가 되어야 한다. 디맥이 20년 이상 쌓아온 ‘디맥다움’이 있다면, 다른 작품들도 각자의 음악, 플레이, 캐릭터, 그리고 유저 간 관계를 통해 자신만의 해답을 만들어가야 한다.
이러한 취향이 반복된 플레이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플레이어가 오래 기억할 상징들을 남기며, 게임 안팎에서 관계를 이어갈 때, 작은 인디 리듬게임도 하나의 ‘세계’로 거듭날 수 있다. 결국 이것이 콘텐츠가 넘쳐나는 지금 시대에, 한국 리듬게임이 단순한 음악 게임을 넘어, 오랫동안 기억되고 지속적으로 확장하는 IP로 자리잡기 위한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이렇게 <3 Words of BIC>라는 시리즈를 통해 ‘연결’, ‘발견’, ‘확장’이라는 세 단어를 따라 BIC 2026을 다시 돌아봤다. 리듬게임을 찾아다니며 개발자와 팬, 작품이 이어지는 순간을 보았고, 익숙한 장르 밖으로 나가 새로운 게임을 발견했으며, 마지막에는 게임이 어떻게 하나의 세계이자 IP로 확장되는지까지 생각을 넓혀볼 수 있었다.
이번 BIC 어워즈 이후 열린 폐막식에서 조직위원장은 “올해 BIC는 새로운 시도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달려왔다”며, 변화의 결과가 언제나 성공적일 수는 없지만 조직위원회와 사무국이 진정 두려워하는 것은 ‘변화를 시도하지 않는 것’ 그 자체라고 강조했다. 이어 변화를 시도하는 것은 언제나 옳은 일이며, 앞으로도 ‘인디 스피릿’을 바탕으로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겠다는 뜻과 함께 내년에는 더욱 고도화된 모습으로 전 세계 인디 창작자들과 다시 만날 것을 기대하며 BIC 2026의 막을 내렸다.
돌이켜보면 이번 BIC는 필자에게 단순한 게임 행사가 아니었다. 12년 동안 리듬게임을 중심으로 형성된 시선을 다른 장르로 넓혀보는 계기였고, 동시에 내가 좋아해온 리듬게임을 이전과는 다른 관점에서 다시 바라보게 만든 자리였다.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에서 시작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취향을 발견하고, 한 작품이 앞으로 어떤 세계로 성장할 수 있을지 상상하게 되는 것. 어쩌면 그것이 BIC가 내세웠던 ‘변화‘였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올해 BIC를 모두 체험한 필자는, 이 변화가 매우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올해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만, BIC의 다음 이야기는 이미 시작되고 있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는 내년 부산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낼 작품이 만들어지고 있을 것이고, 올해 만났던 개발자와 게임들 역시 또 한 번 성장한 모습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중에는 다시 만나고 싶었던 반가운 친구도, 아직 이름조차 모르는 새로운 ‘발견’도 있을 것이다.
2026년의 BIC가 필자에게 연결과 발견, 그리고 안목을 확장하는 시간이었다면, 2027년의 BIC는 또 어떤 모습과 단어로 기억될까. 또다시 부산에서 새로운 인디 스피릿과 마주할 그날을 기대하며, <3 Words of BIC>의 이야기를 여기서 마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