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이 일어난 지 70년. 민족상잔의 비극, 세상에서 가장 슬픈 전쟁으로 불리는 이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가족을 잃고, 고향을 떠나야 했다. 그리고 그들의 아픔과 상처는 70년이 지난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군산에 자리 잡은 실향민인 오영두(85) 할아버지와 공원자(82) 할머니 부부도 우리 비극의 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으며 살아온 주인공들 중 한명이다.
운 좋게 온 가족이 피난민선을 탈 수 있었던 공원자 할머니완 달리 고향에 어머니와 두 동생들을 남긴 채 아버지 손에 이끌려 월남했던 오영두 할아버지.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다시는 가볼 수 없는 고향에 대한 안타까움을 평생 가슴에 묻고 살아왔다. 이런 할아버지를 보듬고 위로하며 함께해 준 사람이 공원자 할머니였다.
피난민촌에서 만난 아버지들 소개로 얼굴도 못 본 채 백년가약을 맺었던 두 사람. 8남매를 낳고 다복한 가정을 꾸렸지만 기댈 곳 하나 없던 두 사람의 삶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군산에 자리 잡은 많은 실향민들이 그러했듯. 가난한 실향민이던 부부가 맨몸으로 시작할 수 있는 건 조개잡이뿐. 8남매 자식들을 굶기지 않기 위해 지독하단 소릴 들을 만큼 밤낮없이 일하는 것 외엔 다른 도리가 없었다.
이제 여든다섯, 여든둘. 그만 쉬며 여생을 즐겨도 좋으련만. 부지런함이 몸에 밴 부부는 여전히 캄캄한 갯벌과 새벽시장을 누비며 현역으로서의 삶을 놓지 못한다. 여전히 자식들에의 든든하고 편안한 그늘이 되어주고 싶어서다.
어떻게든 이 땅에 뿌리내리기 위해 악착같이 달려온 시간. 무심한 세월은 쉼 없이 흘렀지만 고향에 두고 온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은 무뎌지질 않고. 이제 그런 서로를 위로하고 다독이며 서로의 변치 않는 ‘고향’이 된 부부. 오영두, 공원자 부부의 삶을 인간극장이 함께 한다.
격동의 세월을 지나다
돌아가질 못할 고향과 만나지 못하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평생 가슴에 품고 산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전라북도 군산시. 한국전쟁 때 피난을 와 이곳에 둥지를 틀고 평생을 치열하게 살아온 오영두(85) 할아버지와 공원자(85) 할머니 부부의 삶을 보면 그 의미를 조금은 알 수 있는데.
1.4후퇴 때 아버지 손에 이끌려 월남한 오영두 할아버지. 고향인 황해도에 어머니와 동생들을 남겨둔 채 남한으로 온 실향민이다. 잠시면 될 줄 알았던 이별은 70년이 되도록 끝나질 않았고. 할아버지는 평생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안타까움을 가슴에 품고 살아왔다. 그런 영두 할아버지 마음속 빈자릴 채워준 사람이 원자 할머니였다.
원자 할머니 또한 전쟁 당시 남한으로 피난을 온 실향민. 피란민 촌에서 만난 아버지들 주선으로 백년가약을 맺었고 8남매를 낳으며 다복한 가정을 꾸렸다. 그러나 농사지을 땅도, 연고도 전혀 없던 이곳에서 실향민이었던 부부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은 맨손으로도 시작할 수 있는 조개잡이뿐이었다.
8남매를 위해 독하단 소리 들을 만큼 억척같이 살아온 부부. 살기 위해… 손이 곱고, 허리가 굽는지도 모르고 일만 하며 보낸 세월이었다.
우리는 여전히 현역입니다.
평생을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살아온 삶. 밤낮도, 계절도 없이 갯벌을 누비느라 허리는 굽고 손가락 마디마디 성한 곳이 없지만. 이젠 그만 쉬며 여생을 즐기시란 자식들의 만류에도 부부는 여전히 일 욕심을 버릴 수가 없다.
바닷물이 더 많이, 더 빠르게 빠지는 ‘사리’ 기간에만 할 수 있는 조개잡이다 보니. 물 때맞춰 일하느라 밤낮이 바뀌기 일쑤. 제발 낮에만 일하란 원자 할머니의 만류에도 영두 할아버지의 고집을 꺾을 수가 없는데.
부창부수라고 하지 않던가. 원자 할머니 역시 성치 않은 몸을 이끌고 매일 새벽, 시장으로 향한다.
‘놀면 뭐 하냐’, ‘쉬면 더 아프다’며 부부가 일 욕심을 꺾지 않는 건 자식들 때문이다. 자식들에게 하나라도 더 물려주고 싶은 것이 부부의 바람. 가진 것 없이 살며 겪어야 했던 삶의 숱한 고비와 시련을 자식들만은 겪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부부를 여전히 현역으로 살게 한다.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당신이 나의 고향’
운이 좋게 온 식구가 함께 피난선에 올랐던 원자 할머니완 달리 가족들을 북에 남겨두고 와야 했던 영두 할아버지. 명절이나 생일 등 특별한 날만 되면 할아버진 말이 없어지곤 했다.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흘러도 할아버진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 오지 못한 미안함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영두 할아버지가 가슴앓이를 할 때마다 묵묵히 옆자리를 지키며 힘이 되어 줬던 원자 할머니. 영두 할아버지에겐 어느새 원자 할머니가 가장 든든하고 따뜻한 존재, ‘고향’이 됐다. 젊은 날은 사느라 바빠 살가운 말 한마디 나눌 여유도, 살림살이 거들어 줄 시간도 없었다는 영두 할아버지가 요즘 달라졌다.
외출할 때면 늘 원자 할머니의 손을 꼭 잡아주고 서 있는 것도 힘든 원자 할머니를 위해 밥이며 빨래 같은 살림도 척척 대신해준다. 남편의 배려와 마음이 좋으면서도 원자 할머닌 미안함을 감추지 못하는데. 어느새 서로가 서로의 ‘고향’이 되어버린 영두 할아버지와 원자 할머니. 격동의 시대를 함께 지나고 이제야 인생의 봄날을 맞은 것 같다고 말하는 부부. 두 사람의 오늘은 그래서 눈이 부시게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