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와이어) 2020년 07월 10일 — 문예출판사가 이재형 작가의 ‘프랑스를 걷다: 르퓌 순례길에서 만난 생의 인문학’을 펴냈다.
걷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걷는다는 단순한 행위가 주는 기쁨과 창조성에 주목한 다비드 르 브르통의 산문집 ‘걷기 예찬’과 레베카 솔닛의 ‘걷기의 인문학’의 이야기를 참고하면, 오늘날의 걷기는 운동이나 이동한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이제 걷는다는 것은 개인의 생각과 가치관을 반영하는 라이프스타일이라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스페인 산티아고로 이어지는 프랑스 르퓌 순례길을 안내하는 이재형의 ‘프랑스를 걷다’는 순례길을 걷는 것을 통해 삶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고자 하는 이들에게 깨달음의 메시지를 주는 책이다. 이 책에서 유럽을 문화적으로 각성시킨 순례길은 새롭게 사유하는 자들을 만드는 일상의 길로 다시 탄생한다.
저자 이재형은 20년 이상 프랑스에서 거주하며 프랑스의 문학, 사상, 사회과학 도서 90여권을 번역해 한국에 소개한 전문 번역가다. 그는 여러 차례 순례길을 걸으며 정신적인 변화를 느꼈고 그가 느낀 순례길의 아름다움과 변화의 이유를 글과 사진으로 표현해 한 권의 책에 담았다.
‘순례길’ 하면 스페인이 떠오르지만, 이 책에서 소개하는 순례길은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프랑스의 르퓌 순례길이다. 이 길은 프랑스 남부 르퓌(Le Puy En Velay)에서 생장피에드포르(Saint-Jean-Pied-de-Port)로 이어지는 750킬로미터의 여정으로 스페인 순례길에 비해 많은 언덕과 계곡 그리고 고요한 숲길이 있는 순례길이다. 살펴볼 문화유산이 많아 전 세계 순례자들을 조용히 불러 모으는 색다른 순례길이기도 하다.
르퓌 순례길의 고요한 숲길을 걷다 보면 ‘보물섬’을 쓴 루이스 스티븐슨이 당나귀와 함께 걸었던 고독한 순례길, 세벤 지역의 종교적 박해, 보호받지 못한 순례자를 돌보는 오브락 자선병원, 오방 광산에서 생각할 수 있는 한국의 사북항쟁, 프랑스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알제리 전쟁의 흔적 등 프랑스에 새겨진 역사를 만날 수 있다.
또 프랑스의 예술과 문화도 이 순례길에서 느낄 수 있다. 저자는 르퓌 길 위에서 얀 페르메이르, 오귀스트 로댕, 장 바티스트 피갈, 에두아르 마네, 폴 엘뤼아르, 에밀 졸라, 프랑수아즈 사강, 프랑시스 잠 등 프랑스를 대표하는 여러 예술가의 자취를 발견하고, 그들이 작품에서 보여주고자 했던 프랑스의 일상을 생생하게 들려주기도 한다.
이 책에 실린 르퓌 순례길의 역사와 문화도 멋진 이야기이지만 저자는 이 책에서 걷는 것의 의미를 생각해 보길 바라는 마음도 오롯이 담았다. 그는 머나먼 순례길이 아니라도 익숙한 집을 나와 한 걸음 내딛는 것의 중요함을 ‘요나’의 비유를 빌려와 말한다. ‘나, 나 순례자는 고래 배 속에 갇혀 있다가 또 다른 나, 새로운 나가 되어 그곳에서 나와 더 넓은 곳으로, 더 높은 세계로 걸어 나간다.’
르퓌 순례길은 삶을 일깨우는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국적과 출신을 나누지 않는 순례자들, 공존과 연대의 가치를 중심으로 지속 가능한 경영을 실험하는 소바주 영지, 자동차가 없는 길, 이름 모를 순례자를 위해 마을 사람들이 마련한 먹거리 등. 르퓌 순례길은 우리에게 평등, 연대, 나눔, 공존, 소통, 배려의 순간을 경험하게 하고 소유와 집착에서 벗어나 더 넓은 세계에 마음을 여는 삶을 상상할 수 있게 한다. 그러나 그런 경험이 꼭 머나먼 이국땅을 밟아야 할 수 있는 것일까. 저자는 호기심에 순례길을 걸었고 변화의 순간을 경험했다. 저자의 생각처럼 걷는다는 것이 우리에게 창조적인 순간을 안겨주는 행위라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어느 길 위에서든 새로운 마음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이재형의 르퓌 순례길 여행은 그러한 생의 진리를 발견하는 인문학적 여정을 그린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