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수기 탐험대 2월호] 리듬게임 답지 않은 ‘리듬게임‘ – 그 개성의 시작

노트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고, 플레이어는 타이밍에 맞춰 건반을 누른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리듬 게임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1997년 코나미의 ‘비트매니아’ 시리즈를 시작으로 이 방식은 사실상 리듬 게임의 표준이 되어 왔다. 최근에는 디제이맥스와 이지투온 등 PC 리듬 게임이 4키부터 8키까지의 건반 구조를 그대로 이어가면서도, 트리거 노트나 ‘게이트’처럼 라인이 열리고 닫히는 등 다양한 연출을 더해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한동안 견고하게 유지되던 리듬 게임의 공식이 최근 들어 한층 역동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전통적인 건반 리듬 게임이 여전히 시장을 이끌고는 있지만, 게임 업계에서는 인디 게임을 중심으로 리듬을 단순한 부가 요소가 아니라 핵심 상호작용 기제로 삼아 FPS, 액션, 로그라이크, RPG와 결합하는 ‘복합 리듬 게임’이 주목받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리듬 게임 특유의 짜릿한 손맛은 살리면서도, 액션 장르의 역동성이나 서사의 몰입감을 함께 전달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이제 더 이상 음악에 맞춰 ‘벽돌을 깨는’ 패턴만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소위 ‘능동적인 리듬 게임’이 리듬게이머들의 게임 라이브러리를 새롭게 채우고 있다. 이번 <비수기 탐험대> 창간호에서는 업데이트가 드문 비수기에도 새로운 재미를 발견할 수 있도록, 기존 리듬게임과는 다른 관점에서 ‘리듬게임답지 않은 리듬게임’이라는 독특한 주제로 이야기를 시작해보고자 한다.

비트에 맟춰 총 빵야빵야: 리듬 FPS의 등장

박자에 맞춰 적을 조준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난이도에서 오히려 매력을 느끼고 도전하는 리듬 게이머들도 적지 않다. 리듬 FPS 장르는 사격, 재장전, 이동 등의 모든 행동을 배경 음악의 리듬에 맞춰 동기화해야 하는 것이 특징이다.

대표적인 리듬 FPS 게임인 ‘메탈: 헬싱어’는 박자 동기화를 통한 FPS 구조를 가장 성공적으로 구현한 작품으로 꼽힌다. 이 게임에서는 플레이어가 음악 박자에 맞춰 공격할수록 ‘분노’ 게이지가 상승하고, 그에 따라 공격력 역시 크게 증폭된다.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은, 분노 수치가 최고조에 다다르면 배경음악에 강렬한 메탈 보컬이 더해지면서 플레이어에게 한층 강화된 오디오 경험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히 적을 격파하는 것을 넘어서, 플레이어가 음악과 전장의 분위기를 함께 주도하는 ‘지휘자’ 같은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또한 제목과 분위기에 걸맞게, 메탈 장르의 곡들이 게임 전반에 풍부하게 수록되어 있으며, 지옥을 연상시키는 비주얼과 캐릭터 디자인 역시 ‘리둠(Doom)게임’이라는 독특한 아이덴티티를 확립하고 있다.

 

또 다른 리듬 FPS인 ‘로보비트’는 사격 뿐만 아니라 이동 메커니즘까지 리듬에 맞춰야 한다는 점에서 한층 진화된 경험을 제공한다. 플레이어는 벽 달리기, 슬라이딩, 더블 점프 등 다양한 파쿠르 동작을 음악의 박자에 맞춰 실행해야 하며, 이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경우 스킬 쿨타임 단축이나 공격력 증가와 같은 직접적인 이익을 얻을 수 있다. 특히 로보비트는 사용자가 보유한 음악 파일을 직접 업로드하고, 게임 내 에디터를 통해 자동으로 박자를 생성할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해 콘텐츠의 확장성을 크게 높였다. 이는 리듬 게임에서 흔히 지적되는 ‘한정된 곡 수’ 문제를 사용자 참여 기반 콘텐츠로 효과적으로 해결한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세상 모든 것이 음악이다: ‘하이파이 러시’와 ‘라타탄’

단순히 장르를 결합하는 수준을 넘어, 게임 내 세계의 물리 법칙 자체를 음악과 정교하게 연동하는 시도도 두드러진 성과를 내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기존 리듬게임의 틀을 과감하게 벗어난 ‘하이파이 러시’는 주인공 차이의 가슴에 이식된 뮤직 플레이어를 통해 세상의 모든 사물과 적의 움직임이 비트에 맞춰 흐르는 독창적인 설정을 선보였다. 배경 음악이 세계 내부의 실제 소리로 작동하는 ‘다이제틱 사운드트랙’ 시스템 덕분에, 환경 오브젝트뿐만 아니라 적의 공격까지도 리듬에 따라 움직인다.

특히 눈에 띄는 시스템은 ‘리듬 패링’이다. 이는 적들의 변칙적인 공격 패턴을 일종의 ‘콜 앤 리스폰스’ 방식으로 정확히 받아쳐야 하는 구조로, 액션 게임의 긴장감 넘치는 전투를 리듬게임 특유의 정교한 판정 시스템으로 승화시켰다. 또한, 리듬에 익숙하지 않은 사용자들을 위해 로봇 고양이 ‘808’을 시각적으로 리듬을 안내하는 메트로놈으로 사용해 접근성까지 고려한 설계 역시 리듬게임이란 장르를 쉽게 들어오게 한 배려가 느껴진다.

또 다른 사례로는 전설적인 리듬 전략 게임 ‘파타퐁’의 정신적 후속작인 ‘라타탄’의 등장이 있다. 2025년 9월 출시된 라타탄은 7개의 버튼 조합으로 군단에 명령을 내리는 ‘리듬 커맨드’ 시스템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이번 작품에는 최대 4인 온라인 협동 플레이와 로그라이크 요소가 추가되어 매 판 새로운 성장 전략을 필요로 한다. 특히 박자에 완벽하게 맞추며 게이지를 채울 때 발동하는 ‘피버’ 모드는 화려한 비주얼 이펙트와 함께 유닛의 우렁찬 합창이 배경음악에 힘을 더해주어, 플레이어가 게임에 몰입하며 강렬한 공감각적 쾌감과 승리감을 느낄 수 있도록 설계됐다.

한국 인디 게임의 독창적 행보

지금껏 소개한 리듬 장르의 게임들이 다 외국의 게임들이었다. 그렇다면, 리듬게임이라면 어디 꿀리지 않는 한국 리듬게임에도 이런 리듬게임 답지 않은 게임들이 과연 있을까. 당연히 있다. 특히 한국 인디 씬을 중심으로 장르의 관습을 비트는 실험적인 작품들이 쏟아지고 있다.

그 대표작으로는 지난 BIC 2025에서 만난 ‘풍비박산‘이 그 주인공이다. 플레이어는 요괴 세계의 포장마차 ‘풍비박산’의 직원이 되어, 모든 재료가 나오는 마법의 전기밥솥과 함께 각양각색의 한국 설화 속 요괴 손님들을 맞이한다. 주문을 받으면 요리 과정이 리듬게임으로 진행되는데, 가장 간단한 ‘밥’부터 명절에서만 볼 수 있었던 갈비찜, 떡국 등 친숙한 한식 요리의 각 ‘재료’를 만드는 과정이 리듬게임 커맨드로 구현되며 WASD/방향키 조합으로 주어진 커맨드를 리듬에 맞춰 넣고 엔터키로 재료를 완성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소위 ‘진상짓’이라 불리는 보스 페이즈 역시 리듬게임 커멘드로 처리되어 리듬게임의 재미 역시 챙겨 어려운 난이도보다는 연출적인 재미와 몰입감에 중점을 두어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게 만들었다.


결국 ‘리듬게임답지 않은 리듬게임’의 등장은 단순한 장르 혼종을 넘어, 우리가 게임을 대하는 자체를 바꾸어 놓고 있다. 리듬게임은 더 이상 박자에 맟춰 노트를 치는 단순한 방식이 아니라, 더욱 다양한 플레이 방식으로 규칙을 정의하며 플레이어의 감정을 이끌어내는 하나의 새로운 장르가 되었다. FPS이든, 액션이든, 전략이든, 혹은 동네 포장마차를 배경으로 한 소소한 이야기든 간에, 리듬은 이제 단순히 건반을 넘어 장르의 경계를 허무는 가장 강력한 매개체와 한다.

어쩌면 이 주제야 말로 ‘비수기 탐험대‘라는 새로운 시리즈에 잘 어울리는 첫 주제가 아닐까 싶다. 다음 비수기가 찾아왔을 때, 우리는 더 이상 “새 업데이트가 없어서 할 게임이 없다”고 말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미 우리 곁에는, 익숙한 장르의 껍데기 속에 전혀 새로운 박동을 숨겨둔 실험적인 리듬 게임들이 조용히, 그러나 분명한 울림으로 플레이어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비수기 탐험대의 주제를 남긴 첫 탐험대에게 감사를 전하며, 다음 비수기에 더욱 재미있는 주제로 찾아오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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