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밥상] “진주만의 보물 밥상을 찾아서”

남해의 세찬 물살이 빚어낸 반가운 해산물

갯장어, 쥐치에서 갈치, 참숭어까지!

청정해역이 품은 건강한 진수성찬

진주만의 힘, 사천 갯장어

  갯장어는 수심 20~50m의 모래 바닥과 암초에 사는 회유성 어종이다. 겨울에는 제주도 남쪽 해역에서 지내다가 봄이 되면 남, 서해안으로 북상한다. 그래서 요즘엔 경남 사천, 고성이나 전남 여수, 고흥에서 연안 연승(주낙)으로 잡힌다.

  31살부터 갯장어 배를 탔다는 신기봉 씨(65)는 코앞 분간도 어려운 캄캄한 새벽 2시가 되면 졸린 기색도 없이 날랜 걸음으로 갯장어 잡이에 나선다. 갯장어를 잡기 위해서는 사람 먹기도 모자라는 전어를 미끼로 쓴다. 그런데 이 미끼를 탐내는 존재가 또 있으니. 출항 전이면 어김없이 배를 찾아오는 귀여운 불청객 수달이다. 쏜살같이 사라지는 수달을 바라보는 여유도 잠시. 갯장어가 잘 잡히는 어장에 도착하면 시간과의 싸움이 시작된다. 동트기 전, 긴 낚싯줄에 매달린 바늘마다 쉴 새 없이 미끼를 꿰어 바다로 보내 날이 밝으면 주낙을 올린다. 시간에 맞춰 육지로 돌아오면 아들 박근영(40) 씨가 기다리는데. 어머니 신기봉 씨가 잡아온 갯장어는 아들 박근영 씨의 이름으로 경매장에 나간다. 경매를 마치면 다가오는 점심시간. 모자가 만나러 가는 사람이 있다. 기봉 씨가 오래도록 알고지낸 친한 언니인 김판선(66) 씨다. 판선 씨가 만들어준 갯장어뼈튀김은 배 위에서 꼭 챙겨먹는 간식이란다. 갯장어 지느러미와 뼈를 사골처럼 푹 고아 만든 육수에, 잘게 칼집 낸 갯장어 한 점을 데치면 바다 꽃처럼 핀다는 갯장어데침회. 갯장어회와 갯장어숯불양념구이까지. 갯장어가 있어서 즐겁다는 이들의 갯장어 밥상을 만나본다.

국민간식 쥐치포는 살아있다, 삼천포 쥐치

  삼천포는 1995년 사천군과 통합되면서 사천시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그렇지만 삼천포라는 지명은 여전히 또렷한 존재감을 빛낸다. 삼천포 하면 떠오르는 상징이 여럿이지만, 그중 제일은 쥐치포다. 오래전엔 쥐치를 먹지 않았다. 살이 적은데다 이마에 돋은 가시 같은 뿔 때문에 그물이 엉키기 일쑤라 어부들은 골치아파했다. 하지만 1960년대부터 삼천포에서 쥐치포 가공이 시작되면서 쥐치포는 ‘국민간식’이자 ‘서민들의 술안주’로 사랑받기 시작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쥐치포가 유명해졌을까? 맛이 좋지만 다른 물고기에 비해 살이 많지 않아 고민하던 끝에 여러 마리의 살을 포개서 만드는 쥐치포를 생각해냈고 그것이 전국적인 인기를 끌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하지만 지금은 쥐치의 어획량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그렇다보니 1970-90년까지만 해도 삼천포 일대에 쥐치포 가공공장만 100곳이 넘었다지만, 지금은 10여 곳 밖에 남지 않았다. 하지만 ‘국민간식 쥐포’로의 자존심마저 잃은 것은 아니다. 40년 넘게 쥐치포를 만들며 이제는 2대가 함께한다는 정기현(67) 씨와 정휘록(37) 씨 부자. 삼천포항을 찾아 한때는 쥐치 배들로 불야성을 이뤘다던 옛 모습을 추억하고. 이제는 귀해졌다는 쥐치회, 쥐치알포와 쥐치포석쇠구이, 쥐치매운탕으로 밥상을 차려본다.

적량마을 사람들과 갈치 부부, 남해 미조항 갈치

 

 

 

 

 

  사면이 한려수도해상국립공원인 남해군엔 명물도 많다. 유자/치자/비자의‘3자’에서 죽방렴 멸치에 다랭이 논, 방조어부림까지 자랑할 것 투성이다. 그런 남해군에는 또 하나의 자랑이 있다. 바로 미조항 갈치다. 남해군 최남단의 미조항은 남해의 어업전진기지로 꼽히는데. 미조항 갈치는 그물이 아닌 채낚기로 잡기 때문에 비늘이 떨어지지 않아 온전한 은빛을 유지하고, 수심이 깊지 않아 살이 두툼하며 단단하다.

  남해군 적량마을은 오래전 작은 배로 노를 저어 마을 앞바다로 나가면 갈치를 많이 볼 수 있었단다. 아가씨들은 배 타러 나가면 죽는다고 생각하던 시절, 마을에 배를 타러 나가던 용감한 아가씨가 있었다고. 그가 바로 배남엽(74) 씨다. 정종필(77) 씨와는 함께 갈치 조업을 하다가 정이 쌓여 결혼한 지 50년 가까이 된 갈치 부부. 한 눈에 좋은 갈치를 알아보고, 갈치를 맛있게 먹는 방법을 알려주겠다며 팔을 걷어붙이는데.

  막걸리에 헹궈내면 비린내가 사라지고 식감을 더 꼬들꼬들하게 살려준다는 갈치회, 진주만의 해풍을 맞고 자란 고사리로 만들었다는 갈치고사리조림에 마을에서 시집·장가보낼 때 잔치를 하면 빠질 수 없다는 홍합(담치)지짐까지 남해군의 가을 별미를 맛본다.

하동포구의 진미, 참숭어

  하동군 섬진강 하구에서 진주만에 이르는 기수지역은 참숭어가 살기 알맞은 조건을 갖춘 곳이다. 언뜻 보기에 잔잔해 보이는 바다지만 그 속의 물살은 그 어느 곳 보다 빠르다. 참숭어들은 그 물살을 이기느라 단련되어 살이 탄탄하다.

  하동 앞바다에 참숭어 해상가두리양식을 하고 있는 박이진(60) 씨와 박민영(32) 씨는 삼촌과 조카 사이다. 박이진 씨는 20여 년 전부터, 박민영 씨는 삼촌의 권유로 5년 전부터 참숭어를 키웠단다. 양식이라고 해도 키우는 어민 입장에선 이래저래 신경 쓸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란다. 물이 적게 움직이는‘조금 때 산소가 비어서(산소량이 적어서) 폐사를 한다거나, 장마와 태풍이라도 오면 바닷물의 염도가 낮아져 폐사하는 일이 생길까 노심초사라고. 하지만 하동 참숭어가 우리나라 양식 참숭어 생산량의 약 70%를 차지한다는 자부심을 가진 삼촌과 조카.

  그런 박민영 씨에게는 삼촌이 한 명 더 있다. 박이진 씨와 동네에서 호형호제하며 지낸지 20년이 넘는다는 김창규(51) 씨가 그의 동네 삼촌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가족처럼 밥상을 함께한다는 그들. 양동이 하나만 챙겨 박민영 씨에게 가면 참숭어를 그득히 챙겨준다며, 괜히 힘들게 낚시할 필요 없다는 김창규 씨의 이야기에 밥상에 모여 앉은 이들이 웃는다. 박민영 씨의 참숭어로 김창규 씨가 차려주는 참숭어 밥상을 만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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