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0년, 스팀 플랫폼에 출시된 ‘디제이맥스 리스펙트 V’와 ‘이지투온 리부트 R’은 PC 건반 리듬게임의 본격적인 부활을 알렸고, 이후 부활한 건반 리듬게임 시장은 새로이 변화의 바람을 맞이했다. 2021년 ‘식스타 게이트: 스타트레일’이 보컬로이드, 동방 프로젝트 등 기존 두 리듬게임에 주목받지 못했던 서브컬처 장르를 적극적으로 개척한 것을 시작으로 최초로 본격적인 스토리 모드를 선보인 ‘칼파: 코스믹 심포니’와 두 곡을 믹싱하는 혁신적인 플레이 방식의 ‘매쉬업 리비전’ 등 장르의 경계를 허무는 다양한 작품들이 연이어 등장하며 리듬게임의 지평을 넓혀가고 있다. 이러한 장르 확대는 플레이어의 선택이 폭이 넓어진다는 장점도 있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과거 2019년 디맥의 얼리엑세스 시절의 ‘블루 오션’과는 달리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는 ‘레드 오션’의 징후이기도 하다. 실제로 벨로프에서 스팀으로 <오투잼 온라인>을 출시했을 당시, 조악한 UI와 시대를 역행한 BM으로 스팀 역사상 최악의 리듬게임이라는 모욕을 받고 10개월 만에 스팀에서 사라진 것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2024년, 다소 과열되 침체된 스팀 건반 리듬게임 시장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 게임이 있으니, 바로 하이엔드 게임즈의 ‘플라티나 랩(PLATiNA::LAB)’이다. 플라티나 랩은 첫 공개부터 디제이맥스 시리즈 출신 제작진의 참여라는 강력한 배경과 신작치고는 놀랄 만큼 탄탄한 수록곡 라인업으로 이목을 집중시켰다. 특히 플레이엑스포 2024 첫 공개 이후 부천국제만화축제의 ‘일러스타 쁘띠’와 ‘일러스타 패스 6’ 등 다양한 행사에서 나올때마다 연이어 큰 호응을 얻었으며, 자체적으로 진행한 2024 K-리겜 연말정산에서 ‘2025년 가장 기대되는 리듬게임’ 1위에 오르는 등 출시 전부터 뜨거운 기대감을 모았다.
이처럼 높은 관심과 기대 속에 마침내 2025년 4월 얼리 액세스로 출시된 플라티나 랩은, 출시 직후부터 많은 플레이어들로부터 호평을 받으며 기대작으로서의 명성을 충분히 입증했다. 물론 기대만큼 뛰어난 장점도 있었지만, 간과할 수 없는 단점 또한 존재했다. 이번 리겜알리미 90분 플레이 리뷰에서는 플라티나 랩의 장점과 단점을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다.
장점 – 캐릭터의 사용
가장 먼저 눈에 띈 플라티나 랩의 강점은 단연 캐릭터, 즉 ‘데이터베이스(DB)’의 적극적인 활용이다. 게임의 메인 캐치프레이즈인 “데이터의 세계는 언제나 예측불허 – 말랑말랑 DB들과 함께하는 리듬 플레이!”라는 문구는 결코 과장이 아니었으며, 실제로 플라티나 랩은 리듬게임 중에서도 보기 드물게 캐릭터를 적극적으로 전면에 내세우고 있으며, 그 활용도와 완성도는 타 리듬게임들과 비교해도 손에 꼽힌다.
게임 플레이 중에는 캐릭터가 Live2D 애니메이션 방식으로 다양한 표정을 보여주며 반응하고, 섹션을 통과하거나 노트를 놓쳤을 때 각각 다른 애니메이션을 보여주는 등 몰입감을 높이는 요소가 가득하다. 특히 펀딩 400% 달성 보상으로 모든 캐릭터에 전문 성우의 풀 더빙이 적용되었으며, 이는 적어도 PC 건반 리듬게임에서는 이례적인 수준이다. 전문 성우들이 참여한 대사 연출은 단순한 효과음에 그치지 않고, 풀 콤보나 퍼펙트 플레이에 따라 나오는 전용 보이스, 곡 셀렉트 시 대사, 심지어 장기간 미접속 시에도 등장하는 대사까지 세심하게 준비되어 있어 캐릭터별 개성을 극대화했다. 이러한 연출은 단순한 UI 요소를 넘어 게임 전체 분위기를 주도하며, 플레이어에게 캐릭터와 함께 호흡하는 듯한 몰입감을 선사하였다.
주로 사용했던 시스템 DB – 아이링을 예로 들자면 효율을 중시한다는 성격에 맞게 짧고 무심한 대사 위주로 이루어져 있지만, 풀콤보 클리어시 나오는 대사 중 하나인 ‘풀. 너무 줄여 말했나?’, ‘효율을 따지는게 무의미할 정도네’ 라는 위트 있는 대사는 물론, 퍼펙트 클리어시엔 ‘퍼펙트 클리어, 이건 줄여 말하면 안되지.’라는 축하의 말을, 3분 이상 작동이 없을 시 선택하지 않는다고 화난게 아니라며 살짝 삐진 듯한 대사도 나와 캐릭터의 개성을 더욱 살려주고 있다. 현재 플라티나 랩은 1000% 펀딩 달성에 힘입어 스토리 모드의 모든 대사를 풀 보이스 더빙으로 제작 중이며, 이러한 데이터베이스들 특유의 개성 있는 더빙으로 게임에 대한 기대감을 한층 끌어올리고 있다.
단점 – 연구일지 시스템
플라티나 랩은 ‘연구일지’라는 인게임 미션형 해금 시스템을 통해 캐릭터와 수록곡을 해금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리듬게임의 특성상 콘텐츠 소모가 빠르기 때문에, 해금 시스템은 플레이 지속 동기를 유지하는 중요한 장치임과 동시에 해금 난이도의 고난이도화를 막기 위해 플라티나 랩은 각 미션을 복수의 조건 중 하나만 클리어해도 해금되도록 설계하여 난이도의 다양성을 확보했다. 또한 최종해금곡에 특별한 해금 연출을 추가하는 등 플라티나 랩이 해금에 있어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 쓴 점은 호평받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다른 곳에서 발생했다. 플라티나 랩의 연구일지는 기본적으로 곡 클리어, 특정 노트 처리 수, 판정 조건 달성 등 반복적인 과제를 통해 콘텐츠를 해금하는 방식인데,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단순 반복과 획일화된 미션에 큰 피로감을 느꼈다. 실제로 연구일지 해금 시스템을 접한 유저들은 원하는 곡을 바로 플레이하는 것이 아니라 해금이 필요한 것이며, 그 곡을 해금하기 위해서는 여러 연구일지를 거쳐 계속해서 반복되는 미션을 클리어해야 한다는 점이 부담스러웠다는 평이 주를 이루었다. 게다가 오리지널 악곡뿐만 아니라 <언더테일>의 메갈로바니아 리믹스, 공개 당시 큰 파급을 몰았던 Ryu☆의 청룡 명의인 <AO-∞> 등 다양한 인기 버라이어티 악곡까지 연구일지로 해금해야 한다는 점이 아쉬움을 자아냈다.
특히 연구일지가 A, B로 나뉘어 각각 별도로 곡을 해금해야 한다는 점은 많은 플레이어에게 호불호가 크게 갈렸다. 각 일지마다 별도의 해금 트리가 존재해 곡 클리어, 노트 정확도, 판정 달성 등 반복적인 과제를 두 번씩 수행해야 하는 구조는 플레이어의 피로도를 크게 높였다. 더욱이 해금되는 곡이 일지마다 다르게 분리되어 있어, 플레이어는 일지 A를 완료한 후에도 일지 B에서 다시 처음부터 반복 플레이를 강요받게 된다. 해금 난이도의 장벽을 낮추기 위해 복수의 조건을 도입했으나, 연구일지 루트까지 이 방식을 적용한 점은 플라티나 랩의 무리수라는 평을 듣고 있다.
현재 플라티나 랩의 연구일지 해금 시스템은 동일한 방식의 지루한 과제를 반복해야 하고, 해금되는 곡마저 루트별로 서로 다르게 분리되어 있어 플레이어에게 끊임없이 처음부터 해금을 반복해야 한다는 강한 인상을 남겼다. 디제이맥스나 이지투온처럼 수록곡이 수백 곡에 달하는 대형 타이틀이라면 어느 정도 수용 가능한 구조일 수 있으나, 이제 막 얼리 액세스를 시작한 플라티나 랩의 얼리 엑세스 기준 수록 악곡 수인 73곡, 그마저도 해금곡을 제외한 기본 곡 수를 기준으로 하면 지나치게 반복 플레이를 강요하는 설계라는 지적이 나온다. 결과적으로 이 시스템은 해금의 즐거움보다는 억지로 플레이를 강요받는다는 인상을 남기며, 게임의 흐름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어 커뮤니티에서는 연구일지 시스템의 개편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주를 이루고 있다.
총평 – 장단점 확실한, 그래서 개성이 더 확실한 플라티나 랩
플라티나 랩은 단순히 리듬게임 장르에 또 다른 타이틀을 추가한 게 아니라, 캐릭터 중심의 높은 몰입도와 실험적인 시스템 설계로 식스타 게이트부터 시작된 ‘제3지대 리듬게임’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젖힌 작품이다. 펀딩 400% 달성 보상으로 적용된 모든 캐릭터의 전문 성우 더빙, Live2D 기반의 생생한 리액션, 그리고 게임 전반에 스며든 캐릭터성과 내러티브는 기존 건반 리듬게임에서는 보기 드문 혁신적인 시도로, 플라티나 랩만의 확실한 차별화 포인트로 자리 잡았다.
반면, 인게임 해금 시스템인 ‘연구일지’는 A와 B로 나뉜 구조 속에서 동일한 유형의 과제를 두 번 반복해야 하는 설계로 인해 플레이어의 지루함을 가중시키고, 콘텐츠가 제한적인 얼리 액세스 단계에서는 그 반복성이 더욱 두드러지게 느껴진다는 단점이 있다. 플라티나 랩이 컨텐츠 소모 속도를 조절하기 위한 연구일지 해금은 오히려 해금이라는 동기 부여 요소가 게임 몰입을 저해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결국, 플라티나 랩은 신작임에도 불구하고 높은 완성도로 오랜 기대를 충족시키며 기대작으로서의 가치를 입증했지만, 캐릭터성과 해금 시스템과 같이 동시에 뚜렷한 장단점을 지닌 작품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캐릭터와 상호작용하는 리듬게임’이라는 새로운 방향성을 향해 과감하게 나아간 이 실험적 작품은 현재 리듬게임 시장이 서브컬쳐 친화적으로 나아가고 있는 점에서 분명한 어드벤티지라 볼 수 있으며, 앞으로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을 것으로 보여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 막 얼리 액세스를 통해 첫걸음을 내딛은 만큼, 플레이어들이 마주한 이 ‘개성 있는 장단점’이 향후 얼리엑세스 과정과 정식 출시 버전에서 어떻게 다듬어지고 확장될지 더욱 기대되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