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겜알리미] 새로운 무대의 서막 – 니엔텀 오푸스 제로 데모 리뷰

2020년 출시 ‘디제이맥스 리스펙트 V’의 화려한 부활은 침체되었던 한국 PC 리듬게임 시장에 새로운 부흥기를 열었다. 이 성공에 힘입어 ‘이지투온’이 양강 구도를 형성했고, 그 뒤를 이어 ‘식스타 게이트’을 필두로 칼파 코스믹 심포니, 플라티나 랩 등 다수의 신작이 등장하며 시장은 꾸준한 양적 팽창을 이뤘다. 하지만 이 풍요 속에서, 시장의 근본적인 의문을 제시한 날카로운 질문이 수면 위로 떠 올랐다.

“왜 한국 리듬게임은 건반 리듬게임을 벗어나지 못하는가?” – 실제로 시장의 주류를 차지한 게임들은 대부분 4키에서 6키 사이의 건반을 두드리는 익숙한 방식을 답습했고, 그 중에서도 8키에 트리거 노트를 적용하는 등 약간의 변주를 넣어도 그 답습을 벗아나지는 못했다. 물론 각 게임은 고유의 악곡 라이선스, 외연 확장, 스토리텔링, 고난이도 패턴 등으로 여러가지 차별화를 꾀했지만, 게임을 플레이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핵심 플레이 방식의 유사성은 유저들에게 ‘새로운 게임이 아닌, 서로 스킨과 곡 팩이 다른 게임’이라는 인상을 지우기엔 역부족이었다. 한때 유명 작곡가들의 대거 참여 소식은 그 자체로 흥행 보증수표였으나, 이제는 상향 평준화된 라인업 속에서 더 이상 특별한 감흥을 주지 못하는 것이 그 일례다.

이 견고한 틀에 균열을 내기 시작한 것은 바로 독창성으로 무장한 인디 리듬게임들이었다. 소운여고의 밴드부를 배경으로 밴드의 합주를 구현한 ‘DODORI’, 오싹한 할로윈과 귀여운 유령의 테마를 녹여낸 ‘할로원더밴드’, 요괴와 요리 시뮬레이터라는 이색적인 조합을 선보인 ‘풍비박산’ 등. 이들은 주류 시장의 트렌드에서 벗어나 자신들만의 테마와 장르적 개척을 통해 리듬게임의 새로운 가능성을 증명해내고 있었다.

그리고 2026년을 앞둔 지금, 이 혁신의 흐름에 동참하는 또 하나의 초대장이 우리를 맞이했다. 현재 성공적인 정식 발매를 이뤄낸 ‘칼파 – 코스믹 심포니’를 통해 스토리텔링과 연출의 역량을 입증했던 ‘케세라 게임즈’가 그 주인공이다. 놀랍게도 그들은 자신들의 성공 공식을 따르는 대신, ‘뮤지컬 러닝 플랫포머’라는 생소한 장르를 선언하며 스스로를 ‘리듬게임 같지 않은 리듬게임’이라 칭하고 나섰다.

영원을 노래하는 찰나의 이야기. 한국 리듬게임 시장에 내놓은 날카로운 질문에 가장 신선한 해답이 될지도 모를 게임. 오늘 소개할 리듬게임은 ‘니엔텀 오푸스 제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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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지난 2024년 지스타(G-STAR)의 케세라 게임즈 부스에서 ‘니엔텀 오푸스 제로’를 처음 마주할 수 있었다. 당시 인터뷰를 통해 직접 들은 게임의 제목, ‘니엔텀(Nientum)’은 ‘아무것도 없는, 서서히 사라져 가는’ 상태를 의미한다. 제작진은 이를 통해 게임 전반에 흐르는 쓸쓸하고 외로운 분위기 속에서도 희망을 발견하는 경험을 선사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여기에 부제인 ‘오푸스 제로(Op.ZERO)’는 ‘첫 번째 악장’을 뜻하는 만큼, 소멸해가는 세계 속에서 새로운 시작을 쫓는다는 서사가 그 이름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러한 기획 의도는 게임의 도입부에서부터 명확하게 드러났다. 밝고 은은한 신전을 배경으로 한 소녀 ‘리오라’의 모습으로 시작되는 인트로는, 곧이어 어둡고 무채색의 공간에 섬뜩한 눈과 가시덩굴이 가득한 어둠에 드리워진 ‘알레프’의 악몽으로 전환된다. 리듬게임의 기본 조작을 알려주는 튜토리얼을 이처럼 강렬한 대비가 돋보이는 스토리의 한 장면으로 완벽하게 녹여낸 연출은, 기존 리듬게임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매우 이색적인 첫인상을 남겼다. 게임의 스토리는 폐쇄된 극장에서 오랫동안 상대 배역을 기다려온 ‘리오라’와, 그녀의 음악에 이끌려 극장을 찾아온 ‘알레프’의 만남으로 막을 올린다. 두 주인공은 모두에게 명작으로 기억되는 동화 속 세계를 탐험하며 그 이면에 숨겨진 비밀을 파헤쳐 나가는 여정을 함께하게 된다.

‘뮤지컬 러닝 플랫포머’라는 장르명처럼, ‘니엔텀 오푸스 제로’는 리듬게임의 노트 처리와 플랫포머의 역동적인 액션을 독창적으로 결합했다. ‘무대 뒤‘라는 이명 아래 플레이어는 ‘열쇠’가 변형된 검을 든 주인공 ‘알레프’가 되어 음악에 맞춰 내려오는 ‘망가진 음정‘인 빨간색과 파란색 보석(단노트)를 처리해 음악을 복구하는, 비교적 직관적인 방식으로 게임을 플레이한다. 하지만 이 게임의 진정한 묘미는 익숙한 규칙을 비트는 혁신적인 연출에 있다.

가장 큰 특징은 기존 리듬게임의 문법을 뒤집은 판정선의 움직임이다. 노트가 고정된 판정선으로 다가오는 일반적인 방식과 달리, ‘니엔텀’에서는 판정선 자체가 노트를 향해 전진한다. 이 역발상 하나만으로도 플레이어는 단순히 노트를 입력하는 것을 넘어, 마치 알레프가 스테이지를 직접 달려 나가는 듯한 강렬한 몰입감을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몰입감은 플랫포머 장르의 핵심 액션들과 결합하며 극대화되는데, 각각의 노트는 공격, 점프, 스위치 조작 등 스테이지 기믹과 유기적으로 연결되며 특히 길게 누르는 롱노트는 대쉬, 벽타기, 행글라이딩과 같은 역동적인 움직임으로 표현되어 시각적 쾌감을 더한다. 여기에 잡몹 ‘먼치킨’과 시소를 타거나, 음악의 흐름에 맞춰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배경 연출 등은 ‘니엔텀’이 단순한 리듬게임을 넘어 한 편의 잘 짜인 ‘액션 활극’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니엔텀’의 가장 파격적인 시도는 리듬게임 장르에 ‘QTE(Quick Time Event)’ 시스템을 전면적으로 도입한 것이다. 세가의 ‘용과 같이’ 시리즈나 소니의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 같은 명작 어드벤처 게임에서 스토리의 몰입감을 극대화하기 위해 사용되던 이 기법은, ‘니엔텀’에서 이야기의 클라이맥스를 장식하는 ‘무대 위’ 시퀀스를 통해 구현된다. 이 특별한 무대에서는 또 다른 주인공이자 무대 위의 배우로 등장하는 ‘리오라’와 함께 무대 장치를 실시간으로 조작하고, 그 조작은 곧 연극의 노래와 이야기를 이어가며 장면을 완성해 극을 이끌어 나간다.

물론, QTE는 자칫 플레이어의 조작 자유도를 제한하여 강제적인 버튼 입력 구간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지만 ‘니엔텀’은 이러한 우려를 전작 ‘칼파 코스믹 심포니’의 스토리 모드에서부터 입증된 뛰어난 스토리 연출력과 음악 게임이라는 장르적 특성을 결합하여 영리하게 극복해 내었다. 플레이어는 단순한 버튼 입력을 넘어, 음악과 연출의 흐름에 맞춰 직접 극의 일부가 되는 독특한 경험을 하게 된다. 실제로 체험 플레이에서 경험한 보스 스테이지의 연출이 이런 QTE 효과를 더욱 뒷받침 해주었다. 거대한 보스가 위협적인 공격을 가하면, 플레이어는 QTE를 통해 ‘리오라’의 연기로 이를 받아친다. 하나의 역할(QTE)이 끝나기 무섭게 무대의 조명과 배경이 실시간으로 전환되며 다음 장면으로 이어지는 모습은, 마치 잘 짜인 한 편의 뮤지컬 공연을 관람하는 듯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프롤로그 격인 챕터 0를 마무리하면, 앞으로 펼쳐질 본편을 미리 맛볼 수 있는 ‘체험 스테이지’가 해금된다. 이 스테이지는 향후 업데이트될 다양한 챕터들의 하이라이트를 모아놓은 일종의 ‘메들리’로 구성되어 있다. 챕터 0의 어둡고 쓸쓸한 분위기와는 대조적으로, ‘도로시’ 역을 맡은 리오라가 잡몹 ‘먼치킨’과 합창을 하거나 ‘카구야 공주’가 되어 노래하는 등 다채로운 컨셉의 무대가 펼쳐진다. 그와 동시에 알레프는 다양한 배경을 탐험하며 역동적인 플랫포머 액션을 선보인다. 물론, 이 메들리 속에는 챕터 0에서 보여주었던 특유의 어두운 분위기 또한 녹아 있어, 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든 ‘니엔텀’만의 독특하고 깊이 있는 세계관을 엿볼 수 있게 한다.

플랫포머와의 성공적인 결합을 선보인 ‘니엔텀’은 음악 게임의 본질 또한 놓치지 않았다. ああああ, Mitsukiyo & seibin, モリモリあつし, Reku Mochizuki, Tatsh, Team Grimoire 등 리듬게임 씬의 저명한 아티스트들이 대거 참여하여 게임의 세계관을 더욱 화려하게 수놓을 예정이다. 여기에 블루점프 소속의 모구구를 비롯해 HINAKO, Sera Amagi, Tomomi Natori 등 실력파 보컬리스트들의 목소리가 더해져 ‘니엔텀’의 무대를 가득 채울 준비를 마쳤다.

‘니엔텀’의 알파이자 오메가라 할 수 있는 스토리 역시, 초호화 성우진이 참여한 풀 더빙으로 몰입감을 극대화한다. 주인공 ‘알레프’ 역에는 <리코리스 리코일>의 ‘미카’ 역으로 잘 알려진 안자이 치카가, ‘리오라’ 역에는 의 ‘스즈카제 아오바’ 역을 맡았던 타카다 유우키가 캐스팅되어 한국 리듬게임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라인업을 완성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놀라운 소식은 ‘모드레드’ 역에 ‘코야스 타케히토’가 캐스팅되었다는 점이다. <죠죠의 기묘한 모험> 애니메이션에서 1부 ‘팬텀 블러드’와 3부 ‘스타더스트 크루세이더즈’에서 스탠드 ‘더 월드’와 함께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지닌 최종 보스 ‘디오 브란도’/‘DIO(디오)’를 연기했던 성우로, 그의 참여 소식만으로도 ‘모드레드’가 이야기에 얼마나 큰 무게감을 더할지 벌써부터 기대를 모으고 있다.

사진 제공=케세라게임즈

다시 지스타에서의 기억으로 돌아가서, 당시 케세라 게임즈는 ‘니엔텀’을 ‘리듬게임 같지 않은 리듬게임’이라는 목표로 제작했다고 밝혔다. 성공적으로 안착한 전작 ‘칼파’의 공식을 따르는 대신, 왜 그들은 건반의 틀을 깨는 새로운 도전에 나서게 된 것일까? 그 답은 바로 ‘칼파’ 시리즈가 쌓아 올린 명성과 그 이면의 고민에 있었다. 당시 인터뷰에서 제작진은 “원작이 되는 칼파 모바일 버전은 하드코어 리듬게임을 표방하며 시작했다”고 운을 뗐다. 실제로 ‘칼파’는 상업 게임이라고는 믿기 힘든 수준의 높은 난이도로 코어 팬들에게는 큰 성취감을 안겨주었지만, 동시에 새로운 유저들에게는 넘기 힘든 거대한 진입장벽이 되었다. ‘니엔텀’의 개발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되었다.

“어떻게 하면 리듬게임에 대한 두려움이나 거부감이 있는 분들도 즐길 수 있을까?” – ‘니엔텀’은 이 질문에 대한 케세라 게임즈의 진심 어린 대답이다. 극악한 난이도로 승부하던 과거에서 벗어나, 더 많은 사람들이 ‘음악과 상호작용하는 재미’라는 리듬게임의 본질적인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장르의 문턱을 낮추고자 한 것이다. ‘니엔텀’의 파격적인 장르 결합과 연출 중심의 플레이 방식은 바로 이러한 개발 철학에서 비롯된 필연적인 결과물이었다.

그들의 새로운 시도는 지스타를 비롯한 다양한 게임 행사에서 즉각적인 반응으로 증명되었다. 제작진에 따르면, 많은 관람객이 ‘니엔텀’을 러닝이나 플랫포머 게임으로 인식하고 접근했고, “플랫포머 게임인 줄 알고 해봤는데 리듬게임이었네? 근데 할 만하고, 생각보다 재밌는데?”와 같은 긍정적인 평가를 남겼다. 물론 기존 ‘칼파’의 팬들 역시“난이도가 쉬워 보이는데 생각보다 어렵다. 그런데 할 만하고 재밌네?”라는 반응은 ‘니엔텀’이 접근성을 높이면서도 게임의 깊이를 결코 놓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처럼 상반된 두 그룹의 유저 모두에게서 긍정적인 피드백을 들을 때마다 큰 뿌듯함을 느꼈다는 제작진. 그들이 생각하는 ‘니엔텀’의 궁극적인 의의는 명확하다. 바로 리듬 게이머와 비(非)리듬 게이머가 모두 즐겁게 즐길 수 있는, 음악과 함께하는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다.

2026년의 한국 리듬게임 시장은 또 한 번의 지각 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디제이맥스와 이지투온의 양강 체제에 제3지대 리듬게임들이 이제는 각자의 자리를 잡게 되어 ‘3강 체제’로 굳어지는 양상이다. 이 고착화된 구도 속에서, 유저들은 점차 단순한 건반의 반복에 지루함을 느끼고 새로운 자극을 원하기 시작했다. 그 갈증에 대한 첫 번째 응답이 바로 앞서 이야기한 인디 리듬게임들의 등장이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참신함만으로는 흥행을 담보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며 많은 인디 게임들이 새로움을 무기로 도전하지만, 결국 시장의 벽 앞에서 그 새로움은 시들어가게 되어 익숙하고 안전한 ‘성공 공식’으로 회귀하거나 혹은 잊혀 가는 딜레마에 빠지곤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니엔텀 오푸스 제로’는 한국 리듬게임 시장의 미래를 가늠할 중요한 바로미터가 될 것이다. 인디게임의 도전 정신과 실험성을 품고 있으면서도, 이미 성공 신화를 써본 중견 개발사의 노련한 연출력과 안정적인 개발력을 갖췄기 때문이다. ‘칼파’ 시리즈를 통해 제3지대의 맹주로 우뚝 선 케세라 게임즈가 스스로의 성공 공식을 부정하고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는 사실 자체가 현재 시장이 얼마나 큰 변화를 갈망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반증이다. ‘니엔텀’이 ‘리듬게임 같지 않은 리듬게임’으로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한다면, 이는 단순히 새로운 게임 하나의 성공을 넘어 한국 리듬게임계가 ‘건반’이라는 오랜 틀을 깨고 나아갈 수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명이 될 것이다. 소멸해가는 세계 속에서 새로운 시작을 노래하는 ‘니엔텀 오푸스 제로’의 이야기는, 어쩌면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나서는 이정표를 향해 갈지도 모른다. 알레프와 리오라가 만들어낼 첫 번째 악장이 부디 PC 리듬게임의 새로운 선풍을 맞이하는 서곡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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