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월, 삭제된 기사 속 지워진 진실
스토리는 신군부가 짜고 글은 언론이 썼다
독재가 만들어냈던 1980년 5월 기자들의 입막음
기자들의 취재와 전문가 패널의 토크를 통해 한국 언론 보도의 현주소를 들여다보는 KBS 1TV <저널리즘 토크쇼 J>.
이번 91회에서는 40년 동안 사라지지 않는 5.18 가짜뉴스 바이러스의 뿌리를 찾아보고, 전두환 신군부의 언론 사용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오랜 시간 신군부의 보도검열을 연구해온 이민규 중앙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와 5.18 당시 현장을 직접 취재했던 나의갑 전 전남일보 기자가 특별 출연한다.
5.18 보도 – 전두환의 ‘입’과 ‘알리바이’가 되다
전두환 신군부에서 이뤄진 보도검열은 특히 5.18 민주항쟁 기간 동안 극에 달했다. 이민규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평균 9.8%였던 기사 삭제율은 5.18 민주항쟁 기간에는 25.77%로 급등했다.
<저널리즘 토크쇼 J>에는 3차례 이상의 검열 흔적이 남아있는 1980년 5월 22일 동아일보 1면 기사 ‘광주 데모사태 닷새째’를 통해, 당시 검열이 얼마나 치밀하고 엄격했는지 살펴본다.
당시 전남일보 4년차 기자였던 나의갑은 기자들이 보도검열관실까지 오리걸음으로 걸어가는 굴욕을 당할 정도로 상황이 엄혹했다고 회고했다.
실제로 그는 검열관에 맞서 저항하다 한 달 동안 출입금지를 당하고, 5월 18일의 참상을 직접 취재해서 기사를 썼지만 지면에 하나도 실리지 않는 경험을 했다.
나의갑 전 기자는 당시의 보도에 대해 “빈껍데기 신문이었다. 참극의 현장에 대해서는 단 한 줄도 못 쓰지 못했다”며 참담한 심경을 토로했다.
당시 5.18 보도는 얼마나 철저하게 신군부의 시선으로 쓰였을까?
<저널리즘 토크쇼 J>에서는 당시 KBS 뉴스영상과 취재원본을 비교해, 당시 뉴스가 보도지침에 얼마나 충실했는지를 살펴봤다.
강유정 강남대 교수는 이 같은 왜곡된 보도가 오늘날 진상규명을 방해하는 요소라고 안타까워했다. 또한 검은 연기와 파손된 차량을 부각하는 사진과 제목들은 광주 시민들을 ‘폭도’로 만들었고, 이는 신군부에게 계엄군 투입, 무력진압의 명분이 되었다.
임자운 변호사는 “전두환 신군부가 마치 평화유지군처럼 그려지는 느낌이 있다”며, 신군부의 범죄 알리바이가 된 보도를 지적했다.
J가 직접 입수한 신군부의 ‘언론공작 계획’
<저널리즘 토크쇼 J>에서는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260여 페이지에 달하는 신군부의 언론공작 문건을 입수했다.
먼저 1980년 5월 작성된 ‘광주 소요 사태 취재유도계획’에서는 언론인에게 취재비 명목으로 현금을 지급하고, 직접 보안부대 수송용 비행기까지 지원하여 취재를 지원해준다는 계획을 확인할 수 있었다.
두 번째 입수 문건인 ‘중진 언론인 접촉 순화 계획’에서는 전두환과 언론사 간부간의 면담 계획이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다.
면담의 주요 내용은 ‘전두환 상임위원장 이미지 부각’이었는데, ‘정의감이 강하고 포용력 있는 대범한 인물’, ‘문무 겸비한 민주주의 신봉자’ 등의 내용이다.
실제로 전두환과 간담회를 가지고 난 후 각 언론사의 사주들은 ‘국내 사태와 정국을 수습하는데 기대할 만한 훌륭한 장군으로 평가함’, ‘순박하고 강직한 인상을 느꼈으며 시국 문제로 국민으로부터 지탄을 받고 있는데 안타깝기 한이 없음’ 등의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이민규 중앙대 교수는 “그 당시를 경험했던 언론인들 중에서는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꽤 많이 있었다”며 언론인들의 자성을 촉구하였다.
5.18 가짜뉴스 바이러스의 뿌리는?
극우 유튜버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5.18 당시 광주 시민들이 범죄를 저질렀다거나, 타 지역의 불순세력이 개입하고 깡패가 합류했다는 등의 가짜뉴스를 퍼뜨리고 있다. 그리고 이 망언의 시초는 1980년 5월 22일 신라호텔에서 언론사 대표들에게 전한 전두환의 발언이었다.
당시 신군부가 만든 유언비어가 언론을 통해 살포되었고, 이러한 가짜뉴스가 40년째 사라지지 않고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언론은 스스로에게도, 가해자 전두환에게도 제대로 된 책임을 묻고 있지 않다.
얼마 전 전두환 골프 논란이 있었을 때도 조선일보와 문화일보는 침묵했다. 특히 조선일보는 ‘헬기 사격이 없었다’는 전두환의 주장을 사실관계를 바로잡지 않은 채 그대로 보도해, 그의 발언에 힘을 실어주었다.
“칼로 한 번 찔러보니 썩은 호박처럼 별 저항 없이 쑥 들어가더라”. 신군부의 언론공작에 앞장섰던 ‘언론반 반장’ 이상재가 당시의 언론에 대해 회고한 말이다. 이 말에 지금의 언론은 어떤 답을 내놓을 수 있을까?
방송 말미에는 5.18 당시 삭제된 MBC의 박금희 양 추모기사가 <저널리즘 토크쇼 J>를 통해 처음으로 공개된다.
5.18 민주항쟁 당시 헌혈 후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총탄을 맞아 사망한 박금희 양. 40년 전 삭제된 그날의 기억을 통해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광주의 교훈에 대해 생각해 본다.
<저널리즘 토크쇼 J> 시즌2 91회 방송에는 강유정 강남대 한영문화콘텐츠학과 교수, 팟캐스트 진행자 최욱, 임자운 변호사, 이민규 중앙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나의갑 전 전남일보 기자가 출연한다.
한국 언론의 현주소를 들여다보는 신개념 미디어비평 프로그램 <저널리즘 토크쇼 J>는 일요일 밤 9시 40분, KBS 1TV에서 만나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