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열두 살 대호
대호의 하루는 오늘도 분주하다. 청소며 빨래 등 집안일부터 동물들의 먹이를 챙겨주는 일까지 대호의 손이 닿지 않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어른도 하기 힘든 일들을 군소리 않고 해내는 대호의 나이는 열두 살. 5년 전, 사고로 뇌 손상을 입은 아빠를 두고, 엄마가 동생을 데리고 집을 떠나면서 대호가 아빠의 유일한 가족이자 보호자가 됐다. 그때부터 아빠의 건강을 되찾게 하기 위해 어린 나이에도 궂은일 마다하지 않고 해온 대호. 대호가 유독 신경을 쓰는 일은 바로 다 죽고 홀로 남은 염소를 돌보는 일이다. 매일같이 풀을 베서 낡은 손수레에 싣고 오는 대호. 한 마리의 염소를 끝까지 지켜내기 위해 지난 1년간 대호의 손에선 수레와 낫이 떠난 적이 없다. 이 염소는 아빠와 대호를 살게 할 소중한 재산이기 때문이다. 대호는 어떻게든 염소에게 가족을 만들어 아픈 몸으로 고생하는 아빠를 돕고 싶다.
못난 아빠의 눈물
5년 전, 사고로 왼쪽 뇌를 다친 아빠 기우 씨. 일하고 돌아오던 중 교통사고를 피하려다 벌어진 일이었다. 두 번의 수술로 기억을 잃고 말도, 행동도 어눌해져 일상생활조차 힘들었던 아빠. 설상가상 아내가 둘째 아들을 데리고 집을 나가면서 모든 건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다. 다 잊었지만, 아빠의 기억 속에 아스라이 자리 잡았던 아들 대호. 아프고 홀로 된 아빠를 지켜주겠다며 아빠 곁에 남아서 지금껏 의젓하게 집안 살림살이까지 도맡아 하는 아들을 보며 눈물 훔친 일도 여러 날이다. 든든하게 속이라도 채워주면 좋으련만, 변변치 못한 살림에 오늘도 밥상엔 김치찌개가 전부다. 6년째, 매 끼니마다 김치찌개를 먹으면서도 불평 한마디 없이 오히려 아빠에게 힘을 실어주는 대호. 그런 아들을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하고 싶은 아빠는 어렵사리 구한 농장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다시 일어설 준비를 하려 한다.
꿈을 실어 나르는 손수레
한 마리 남은 염소를 번식 시켜 살림 밑천을 만들기 위해 정성을 쏟는 대호. 염소 돌보랴 아빠 챙기랴 살림하랴 바쁜 대호에겐 걱정거리가 하나 더 있다. 바로 날로 늘어만 가는 상수도 체납 요금이다. 아빠가 아픈 후로 집안 살림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다 보니, 상수도에 문제가 생겨 5년째 단수 상태로 지내온 것이다. 급수가 끊어진 수도 대신 이웃집에서 페트병에 물을 얻어 와 알뜰살뜰 아껴 쓰는 대호. 깨끗한 물은 식수로, 비가 오면 빗물을 받아 빨래를 하며 물 아끼는 법을 스스로 터득해왔다. 너무 의젓한 아들. 대호만은 티 없이 키우고 싶었는데 못난 자신 때문에 어린 나이에 낫을 든 아들을 보면서 가슴이 미어져 한탄의 눈물을 흘리는 아빠다. 하지만, 대호는 오늘도 씩씩하게 손수레를 끈다. 먹구름이 지나가면 반드시 따스한 햇볕이 내리쬘 거라는 희망. 그 꿈도 대호의 수레에 실려 있기 때문이다.